오늘 말씀에서는 아브라함이 자기 종 엘리에셀을 메소포타미아로 보내어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찾아오라고 하는 내용과 야곱과 에서의 탄생, 야곱이 레아와 라헬과 결혼한 이야기가 주로 나옵니다.
창세기의 내용은 장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서, 사실 통독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곤 합니다. 더 읽고 싶지만 마치 다음을 위해서 아껴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만큼 ㅎㅎㅎ 진도가 잘 나가지요~ (이러다가 레위기에 들어가면 다들 힘들어한다는....ㅋ)
오늘 말씀에서 크게 두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는데, 첫번째는 엘레에셀의 신중함 VS 에서의 신중치 못함, 두번째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나의 선택에 대한 부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엘레에셀의 신중함(말씀을 새겨듣고 붙듬) VS 에서의 신중치 못함(약속 따윈 다 잊어버림)이 오늘따라 더욱 부각되어 보였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아들의 아내감을 찾아오라고 보내면서 했던 말을 아주 신중하게 듣고 새겼습니다.
(창 24:6, 쉬운성경) 아브라함이 종에게 말했습니다. “안 된다. 내 아들을 그리로 데려가면 안 된다.
(창 24:7) 여호와께서는 하늘의 하나님이시다. 주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고향, 내 친척의 땅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리고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셨다. 주께서 천사를 네 앞에 보내셔서 내 아들의 아내를 데려오는 일을 도와 주실 것이다.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해 아내를 골라라.
(창 24: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기를 원치 않으면, 너는 이 약속에 책임이 없다. 하지만 내 아들을 그리로 데려가서는 안 된다.”
그리고 리브가를 만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여러 방법으로 리브가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삭의 짝이 맞는지를 시험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엘레에셀은 주인의 명령에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반해, 뒤이어 나오는 에서의 모습을 보면 맏아들의 권리(장자권)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붉은 죽을 먹겠다고 맏아들의 권리를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창 25:29) 어느 날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는데 에서가 들판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에서는 몹시 배가 고파서
(창 25:30)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그 붉은 죽을 좀 다오. 내가 배가 고프구나.” 이것 때문에 에서는 ‘붉은’이란 뜻에서 에돔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창 25:31) 그러자 야곱이 말했습니다. “먼저 나에게 맏아들의 권리를 파세요.”
(창 25:32) 에서가 말했습니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그까짓 맏아들의 권리가 무슨 소용이냐?”
(창 25:33) 야곱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권리를 나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세요.” 에서는 야곱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이렇게 에서는 맏아들의 권리를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창 25:34) 그러자 야곱이 에서에게 빵과 죽을 주었습니다. 에서는 그것을 먹고 마신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에서는 맏아들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에서는 결국 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새기지 못하고 있었기에 당장 내 육신의 만족을 위하여 맏아들의 권리를 파는 엄청난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습니다. 물론 나중에 야곱이 자신을 속였다고 심히 분노하지만 장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새카맣게 뒤로 한채 먹을 것과 장자권을 맞바꾼 것은 분명히 에서 자신이었습니다. 신중하게 말씀을 기억하고 새겼던 사람(엘리에셀)과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고 신중치 못하게 자신의 육신의 욕망이 앞섰던 사람(에서)은 이토록 다르다는 것을 두 인물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통독 가운데 야곱과 에서, 라헬과 레아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은 불공평하신가? 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그런 모양으로, 그런 환경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아니신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리브가의 태중에서 이미 야곱과 에서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창 25:21) 이삭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아내를 위해 여호와께 기도드리니, 여호와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어 주셨으므로, 리브가가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 25:22) 그런데 리브가의 뱃속에 있는 아기들이 서로 다투었습니다. 리브가는 “어찌하여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생각하며 여호와께 나아가 여쭈었습니다.
(창 25:23) 여호와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나라가 네 몸 안에 있다. 두 백성이 네 몸에서 나누어질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먼저 다 정하시는 것인가?'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게 가능하니 하나님이신거겠지요?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롬 9:10) 그뿐만이 아닙니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에게서 아이를 임신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롬 9:11)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그들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시는 목적을 굳게 세우기 위해,
(롬 9:12) 리브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불러 주시는 분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롬 9:13) 이것은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라고 기록된 대로입니다.
(롬 9:14)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공정하지 못하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롬 9: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자 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롬 9:16) 그러므로 모든 것이 사람의 요구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태어나는 환경이나 상황은 모두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내가 어떤 부모를 만나고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고 어떠한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는지는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고 나서야 그렇게 '되어진' 것을 알게 되니까요.
그런데 분명히 태어나는 조건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지만 매순간 삶의 선택은 나의 몫이라는 것을 오늘 통독 가운데 더욱 새기게 되었습니다.
에서는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먹을 것에 장자권을 팔았고,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복을 다 받게 된 것을 알자 그를 미워하며 죽이려 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 아니냐? 하실 수도 있지만...아무튼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매 순간 선택을 이루어가지요.)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라헬과 레아의 이야기를 보면, 이 두 여인은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듯 자녀를 낳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많은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을 이 두 여인과 두 몸종들을 통해 야곱이 열두 아들을 갖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이루어 성취하셨습니다. 그 여인들도 그런 경쟁을 통해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생기게 될 줄은 몰랐겠지요.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피조물이 어찌 창조주의 뜻과 계획을 감히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태어나는 것조차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걸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매 순간 삶 속에서 내가 무엇을 믿을지, 무엇을 행할지 그 선택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내가 마땅히 행할 바를 찾을 수는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 오늘 내가 처한 상황과 형편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 어떤 존재가 되는가 하는 것이라고 오늘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뜻에 순복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인가? 아니면 계속 남탓, 상황 탓을 하며, 원망과 증오로 나를 채우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절대로 동행할 수 없는 죄인으로 살 것인가?
이 선택은 내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해도 제가 마땅히 예수님을 믿는 가운데 행할 바를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것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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