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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의 마지막은 참으로 참담한 이스라엘의 타락상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나서 세월이 지나 성경의 화자는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의 가정으로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룻 1:1)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에 가뭄이 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유다 땅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갔습니다. (룻 1:2)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고,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이들은 원래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가까운 에브랏 지방 사람이었지만, 모압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룻 1:3) 그 뒤에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룻 1:4) 그 두 아들은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바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습니다. 나오미와 그의 아들들은 모압에서 십 년쯤 살았습니다. (룻 1:5) 그러다 말론과 기룐마저 죽어 버리자,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남게 되었는데, 그러던 어느날 고향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룻 1:6) 그러던 어느 날,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아 유다에 풍년이 들게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압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나오미의 두 며느리도 함께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나오미는 차마 두 며느리를 자신의 고향으로 데리고 갈 수가 없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해주며 며느리들의 어머니에게로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두 며느리 중에 룻은 나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며 어머니의 하나님을 자신도 모시겠다고 합니다.
(룻 1:16) 그러자 룻이 말했습니다. “저더러 어머니를 떠나라고 하거나, 어머니 뒤를 따르지 말라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따라가고, 어머니가 사시는 곳에서 살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제 백성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십니다. (룻 1:17)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겠습니다. 만약 제가 이 맹세를 지키지 않는다면, 여호와께서 제게 무서운 벌을 내리셔도 좋습니다. 오직 죽음만이 우리를 갈라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나오미가 얼마나 이방여인이었던 며느리들에게도 인정받을만한 신앙을 가지고 평소의 삶을 살았을까 하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룻이 자기나라를 떠나서 나오미를 따라가겠다고 할만큼 시어머니의 삶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시어머니 나오미와 그 나오미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룻의 믿음이 대단한데 그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만큼 나오미는 며느리 룻에게 훌륭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엘리멜렉 가문의 친척인 보아스가 룻을 만나게 되고, 룻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룻 2:11) 보아스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 남편이 죽은 뒤에 당신이 시어머니에게 한 일을 들었소. 또 당신이 당신 부모와 당신 나라를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나라로 온 것도 다 알고 있소. (룻 2:12) 여호와께서 당신이 한 일을 갚아 주실 것이오. 작은 새가 자기 어미 날개 아래로 피하듯이 당신이 여호와께 왔으니,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
그리고 보아스는 나중에 룻에게 그녀가 착한 여자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룻 3:11) 이제는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이 바라는 것을 다 해 주겠소. 당신이 착한 여자라는 것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소.
오늘의 말씀을 읽으면서 결국 우리의 삶은 이웃에게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는 바가 있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알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나의 삶은 남에게 보이기 마련이고, 그들은 내 삶의 증인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나의 삶은 "성도의 옳은 행실"로서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진실로 하나님을 옳게 믿고 옳게 따르고 있다면 반드시 내 삶에는 옳은 행실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옳은 행실이 곧 내가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혼인에 필요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라 하셨으니 부지런히 내 옷을 빨면서 성도의 옳은 행실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계 19:7, 개역개정)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계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7, 아가페쉬운성경)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어린양의 결혼식이 가까웠다. 신부는 몸단장을 끝내고 (계 19:8) 빛나고 깨끗한 흰 모시옷을 입었으니 그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를 뜻한다.”
(민 28:31) 너희가 날마다 아침에 바치는 태워 드리는 번제와 곡식 제사와 부어 드리는 전제 말고도 이 제물들을 따로 드려라. 모두 흠 없는 것으로 드려라.’
(민 29:6) 너희가 날마다, 그리고 달마다 바치는 번제와 곡식 제사와 전제 말고도 이 제물들을 따로 드려라. 이것은 화제이며, 그 냄새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
(민 29:39) 너희는 절기가 돌아오면 번제와 곡식 제사와 전제와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 너희가 서약을 지키는 서원제와 자진해서 드리는 낙헌제 말고도 이 제물을 따로 드려라.’”
오늘 민수기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 절기마다 올려드려야 하는 제사와 그 외에 올려드릴 제사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날마다, 달마다 비치는 번제와 곡식 제사와 전제 말고도 제물을 따로 드려야 하는 것이 있었고, 서원제와 낙헌제 말고도 제물을 따로 드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제물들은 모두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한다는 단서까지 있었습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때때로 구약의 율법과 제사법을 보면서 "예수님의 피로 이제는 이 모든 것을 안해도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 주님,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을 이제 안해도 되게 해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랬고요^^ 지금도 그 마음이 영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는데 오늘 통독을 하면서 주님께서 또다른 시각을 열어주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으로서 결코 죄와는 함께 하실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을 너무 사랑하지만 죄가 있는 채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가까이 하실 수가 없어서 친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그 예수님의 피를 믿는 사람을 다시 거룩하게 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 특히 죄를 지은 인간으로서 완전한 죄사함을 주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먼저 이스라엘이라는 가장 약한 민족을 선택하셔서 그들에게 율법과 규례를 주심으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민족으로 삼으시고,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이방민족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결코 거룩하지 못한 사람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결예식이 반드시 필요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참으로 합당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도 정결예식을 치루어야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조금이나마 가까이 나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셨을 때에도 그들은 정결예식을 치루었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 가까이 갔을 때는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출 19: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려가서 나를 보기 위해 가까이 나아오지 말라고 백성에게 경고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출 19:22) 나에게 가까이 나아오는 제사장들도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여호와인 내가 그들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출애굽기에서도 이러하였는데 민수기에 와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과 규례를 일러주십니다. 그 내용을 묵상하다보면 그 율법과 규례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랑과 자비 가운데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죄가 있는 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그 많은 율법과 규례들을 주셨구나 하는 것이 깨달아지면서 사람의 눈으로는 복잡하고 어려운 율법과 규례 속에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전에 구약의 율법과 규례가 왜 이렇게 복잡한가, 왜 이렇게 힘든가 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방법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시고,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게 해주신 은혜가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죄인이어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주님이 허락해주신 '특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았기에 더 이상 율법과 규례를 항목마다 일일이 따르지는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법과 규례의 본질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의 시대가 아니니까 대강 내가 원하는대로 해도 돼, 거기는 이스라엘이고 여기는 한국이니까 그냥 한국 스타일대로 하면 돼'라는 식으로 이것을 내 편의를 위해서 내 마음대로 해석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오늘의 말씀 통독 중에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신 것을 마음에 품으면서 더더욱 나의 오늘 예배가 주님을 더욱 경외함으로 나아가는 예배가 되어야겠다고 결단케 되었습니다. 헌금을 준비할 때, 예배드리러 갈때, 기도할때, 좀 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의식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하여 나의 죄를 회개하고, 더욱 나 자신의 마음과 몸을 성결히 하여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수많은 제물과 제사법을 지키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만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해주신 특권에 감사드리며, 이 예배의 특권을 결코 만홀히 여기지 않아야겠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위기 11:4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베드로전서 1:15)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 광야를 지나며 끊임없이 광야와 이집트를 비교하며 광야에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고 계속 불평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광야가 아니라 가나안 땅이고 광야는 거쳐가는 곳일 뿐인데도 노예생활을 하던 이집트가 훨씬 나았다고 자기들을 죽이려고 여기까지 끌고 왔냐는 망언까지도 서슴치 않았지요.
(민 20:2) 그 곳에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들었습니다. (민 20:3) 그들이 모세와 다투며 말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죽을 때, 우리도 여호와 앞에서 죽는 것이 나을 뻔했소. (민 20:4) 당신은 왜 여호와의 백성을 이 광야로 끌고 왔소? 우리와 우리 짐승을 여기서 죽일 작정이오? (민 20:5)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 끔찍한 곳으로 끌고 왔소? 여기에는 씨 뿌릴 장소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소. 그리고 마실 물조차 없소.”
(민 21:5)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 거요? 여기에는 빵도 없고, 물도 없소. 이 형편없는 음식은 이제 지긋지긋하오.”
하나님은 광야의 과정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내하시고 때론 그들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 분이신지도 보여주셨지만 대개의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다시 돌이킬 기회를 주셨고, 구원해주셨습니다.
(민 21:6) 그러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독사를 보내셨습니다. 독사가 백성을 물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민 21: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당신과 여호와를 원망함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드려서 이 뱀들을 없애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는 백성을 위해 기도드렸습니다. (민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구리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아라. 뱀에 물린 사람은 그것을 쳐다보면 살 것이다.” (민 21: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았습니다. 뱀에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쳐다보면 살아났습니다.
광야를 지나가는 과정 가운데 오늘 통독에서는 시혼과 옥이 다스리던 땅을 지나가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민 21:21) 이스라엘 백성이 아모리 사람들의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 21:22) “왕의 땅을 지나가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우리는 왕의 밭이나 포도밭으로 지나가지도 않겠고, 어떤 우물에서도 물을 마시지 않겠고, 오직 ‘왕의 길’만을 따라 걷겠습니다. 왕의 땅을 다 지나가기까지는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시혼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시혼의 완고함으로 인해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복 당합니다.
(민 21:23) 그러나 시혼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나라를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시혼은 군대를 모아 광야로 나와서 이스라엘을 막았습니다. 그들은 야하스에서 이스라엘과 맞서 싸웠습니다. (민 21:24) 이스라엘은 시혼을 죽이고, 아르논 강에서부터 얍복 강까지 그의 땅을 점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암몬 사람들의 국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국경의 수비는 삼엄하였습니다. (민 21:25) 이스라엘은 아모리 사람들의 모든 성을 점령하고, 그 성에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헤스본과 그 둘레의 모든 마을을 점령했습니다.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산 왕 옥이 다스리던 나라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민 21:33) 그런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산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바산 왕 옥과 그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막으려고 나왔습니다. 그들은 에드레이에서 싸웠습니다.
바산 왕 옥과 그의 군대 역시 이스라엘 백성을 막아섰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 또한 이기게 해주셨습니다.
(민 21: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옥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옥과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땅을 너에게 넘겨 줄 것이다. 너는 헤스본에 살던 아모리 왕 시혼에게 한 그대로 옥에게도 하여라.” (민 21:35)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옥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모든 군대를 다 죽이고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땅을 점령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힘의 원천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결코 그들이 가진 힘과 지혜로 출애굽 이후에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면서 이방 백성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이방백성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두려워 했던 것이며,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을 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민수기 22장에서 24장까지의 내용 중에 발락 왕이 예언자 발람을 시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였지만 그것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수많은 이방백성들이 이스라엘을 해하려 시도했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이스라엘을 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안에 죄악이 있을 때 그들을 치신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정말로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할 대상은 이방나라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 안에 있는 믿는 자를 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죄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나를 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심판의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고,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 권세 또한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참된 지혜를 얻는 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오늘 통독 말씀 중에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모세에게 반역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에 수시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쏟아냈는데, 이번에는 레위지파였던 고라와 르우벤 지파 사람이었던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이스라엘 무리의 유명한 지도자들 250명을 모아서 모세에게 반역을 했던 것입니다.
(민 16:1)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모세에게 반역했습니다. 고라는 이스할의 아들이고, 이스할은 고핫의 아들이며, 고핫은 레위의 아들입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형제로서 엘리압의 아들들입니다. 그리고 온은 벨렛의 아들입니다. 다단과 아비람과 온은 르우벤 지파 사람입니다. (민 16:2) 이 네 사람은 다른 이스라엘 사람 이백오십 명을 모아 모세에게 반역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무리가 뽑은 유명한 지도자들입니다. (민 16:3) 그들은 무리를 지어 와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너무 지나치오. 모든 백성이 다 거룩하오. 거룩하지 않은 백성은 없소.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들과도 함께 계시오. 그런데 당신들은 왜 스스로를 높여서 모든 백성 위에 있으려 하오?”
모세는 이러한 반역 앞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향로를 가져오라고 하고, 하나님께서 직접 거룩한 사람을 뽑으실 것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고라에게 레위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에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지금 그가 반역을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민 16:8) 모세가 고라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 레위 사람은 들으시오. (민 16:9)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당신들을 다른 이스라엘 백성과 구별하셔서, 당신들을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하셨소. 당신들은 여호와의 거룩한 장막인 성막에서 일하며, 모든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여호와를 섬기고 있소. 그것이 부족하단 말이오? (민 16:10)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다른 레위 사람을 가까이 부르셨소. 그런데 당신들이 이제는 제사장까지 되려 하고 있소. (민 16:11)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서 여호와께 반역했소. 아론이 누구인데 감히 그에게 반역한단 말이오!”
사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명령하신 이후로 파라오에게 가서 어려운 말들을 해야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온갖 불평을 들어가며 이 날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반역을 하니, 그것도 지도자급에서 일어났으니 정말 기가 막히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힘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함께 한 사람들의 반역에 대해 더 이상 참지 못한다고 그들을 벌하시려 할 때, 어찌보면 모세와 아론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니 속이 다 시원하고 주님의 판결이 공의롭다 하면서 기뻐하는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을텐데, 그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민 16:20)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민 16:21) “이 사람들에게서 물러나라. 내가 그들을 순식간에 없애 버릴 것이다.” (민 16:22) 그러나 모세와 아론이 땅에 엎드려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백성의 영을 다스리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무리에게 노하지 마십시오. 죄는 한 사람만 지었을 뿐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죄를 주도한 사람이 있었음을 말씀드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노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도 모세와 아론에게 늘 불평을 해왔을 것이기 때문에 이쁜 구석이 없었을텐데도요ㅜㅜ)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곁에서 떨어져 있으라고 백성들에게 말하라고 하시고 결국에 땅이 갈라져 고라와 고라를 따르던 사람들을 삼켜 버리는 무섭고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고라를 따르며 향을 피웠던 사람 250명에게도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경험한 다음 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라와 그들을 따르던 무리들의 죽음이 마치 모세와 아론 탓인양 불평을 하였습니다.
이튿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당신들이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소”라고 말했습니다. (민 16:42) 백성이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들어 불평하자, 모세와 아론은 회막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구름이 장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민 16:43) 모세와 아론은 회막 앞으로 갔습니다. (민 16:4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민 16:45) “이 백성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어라. 내가 그들을 순식간에 없애 버릴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모세와 아론은 땅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진정 노하셔서 그들을 순식간에 없애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아, 모세와 아론에게 사람의 마음이 있었다면 '저들은 죽어도 싸, 자기들이 지금 죄를 지었잖아, 그렇게까지 하나님이 두려운 분인 것을 보고서도 저렇게 불평하다니, 구제할 길이 없는 사람들이군, 죽어 마땅해'라고 했을 것 같은데....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민 16:46)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향로를 가져와서 제단 위의 불을 향로에 담고, 거기에 향을 피우십시오. 급히 백성에게 가서 그들의 죄를 씻는 예식을 행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노하셨습니다. 이미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민 16:47) 아론은 모세가 말한 대로 했습니다. 아론은 모든 백성들이 있는 한가운데로 달려갔습니다. 이미 그들 가운데서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론은 그들의 죄를 씻는 예식을 행하기 위해 향을 피웠습니다. (민 16:48) 아론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 섰습니다. 그러자 재앙이 그 곳에서 그쳤습니다. (민 16:49) 그 재앙 때문에 만 사천칠백 명이 죽었습니다. 거기에는 고라의 일로 죽은 사람의 숫자는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노하셔서 이미 재앙이 시작되었음에도 모세는 아론에게 제단 위의 불을 향로에 담고 향을 피우라고 하며, 백성들의 죄를 씻는 예식을 행하라고 했고, 모세의 말을 아론은 즉시 달려가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 서서 백성들의 죄를 씻는 예식을 행했습니다. 그 재앙 때문에 비록 만 사천칠백 명이 죽었으나 재앙은 거기에서 그쳤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며, 정말로 제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모세, 하나님이 세우신 대제사장 아론...그들은 정말로 사람 수준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진정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내가 죄를 짓지 않았다 하여 죄를 지은 누군가를 하나님이 심판하려 하실 때, 그것이 마땅하다고 팔짱끼고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긍휼이 많으심을 의지하여 모든 이스라엘 무리들에게 노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였고, 이미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이 시작된 것을 보면서도 급히 달려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서 백성들의 죄를 씻는 예식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택함을 입어 제사장의 직분을 갖게 된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누군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만한 죄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저러다가 언젠가 한번 하나님께 혼나지, 쯧쯧'이라고 생각하거나 요즘 같이 거룩하지 못한 교회들의 모습이 빵빵 터져나올 때 '교회가 어쩌면 저래, 목사님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어? 하나님이 심판하시는게 마땅하지, 하나님이 혼내주세요 정신차리게!' 이런 수준의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이것이 어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종의 참된 모습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어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할 제사장 직분을 가진 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주님, 용서해주세요. 하나님의 마음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데, 저는 하나님보다 더 앞서서 내가 마치 의인인양, 내가 마치 그들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인양, 정죄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주님, 용서해주시고, 정말로 예수님 같은 중보자로 세워질 수 있도록 더욱 성숙한 신앙을 가지게 해주세요.
모세와 아론이 광야에서, 사람으로서는 쌩고생을 하는 것 같았으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리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후에 므리바에서 하나님을 거룩히 여기지 않았던 사건이 있어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그 또한 하나님께서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지, 하나님의 종된 자는 얼마나 무익한 종이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시는 일이 되었으니...제게 결코 자고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정말 더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꿇게 해주시고, 정말 더 낮은 마음으로 주님의 충성된 종으로 다른 영혼들을 섬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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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통독에서는 특히 제사장 집안과 레위지파에게 맡기신 사명, 그리고 레위지파가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해서 행해야 했던 율법과 규례 그리고 나실인에 관한 규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은 제사장 가문으로서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성결하게 하는 예식을 행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레위지파는 아론의 일을 도우며 하나님을 만나는 곳인 회막의 일을 돌보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민 3:2) 아론에게는 네 아들이 있습니다. 맏아들은 나답이고, 그 아래로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입니다. (민 3:3) 이것이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입니다. 그들은 기름 부음을 받고, 제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민 3:7) 레위 지파에게 회막 앞에서 아론의 일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일을 돕게 하여라. (민 3:8) 그들에게 회막의 모든 기구들을 관리하게 하고, 회막의 일을 돌보며, 이스라엘 백성의 일을 보살피게 하여라.
레위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구별된 자가 되었는데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드려진 후에 정결하게 씻긴 뒤 회막에서 일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민 8:13) 레위 사람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 앞에 세워라. 그리고 레위 사람을 여호와께 흔들어 바치는 요제로 드려라. (민 8:14) 이렇게 하여 너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레위 사람을 구별하여라. 레위 사람은 내 것이라. (민 8:15) 이처럼 레위 사람을 정결하게 한 뒤 그들을 제물로 드려라. 그래야 그들이 회막에 와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민 8:19) 레위 사람을 모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뽑았다. 그리고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회막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일을 맡아 볼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씻는 예식들을 도울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성소에 가까이 오더라도, 그들에게 재앙이 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실인 역시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된 사람이었습니다.
(민 6:8) 나실인으로 살기로 맹세한 동안에는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다.
(민 6:21) 이것은 나실인의 맹세에 관한 율법이다. 누구든지 나실인이 되기로 맹세했다면, 이 모든 것을 여호와께 바쳐라. 만약 그가 다른 맹세를 한 것이 있으면, 그 맹세도 지켜라. 그것도 나실인의 맹세에 관한 가르침이다.’”
레위지파나 나실인이나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된 사람이었는데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일반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는 달라야 했습니다. 그것이 '불편하고 힘들고 왜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로서 또한 자원함으로 스스로를 성결하게 하는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특별한 책무를 맡기시고 또한 그만큼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제 구약의 율법 시대를 지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부활 승천한 이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자에게 성령이 오시고 그 성령님과 동행하며 세상으로부터 거룩히 구별된 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레위지파와 나실인에 관한 규례를 보면서 이들이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거룩히 구별된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감사함으로 취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 역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율법시대와 같은 규례를 지킴으로 구별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나의 언행심사 가운데 거룩하신 하나님의 향기가 나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내 안에서부터 확고하게 할 때,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귀한 깨달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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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통독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여 율법과 규례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레 26:45) 나는 그들을 위해 그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 내었고, 다른 나라들도 그것을 보았노라. 나는 여호와니라."
바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내셨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이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셨는데 정말로 그 말씀을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창 17:6) 내가 너에게 많은 자손을 줄 것이다. 너를 여러 나라들 위에 세우리니, 너에게서 왕들이 나올 것이다. (창 17:7) 내가 너에게 언약을 세울 텐데, 이 언약은 지금부터 내가 너와 네 모든 자손에게 세우는 언약이다. 나는 네 하나님이 되며 네 모든 자손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창 17:8) 너는 지금 이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 땅 전체를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며, 나는 네 자손의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
민수기 2장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603,550명입니다.
(민 2:32) 집안별로 센 이스라엘 백성의 수는 이러합니다. 각 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부대별로 모두 합하면,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입니다. (민 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셀 때, 레위 사람은 세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서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에, 레위지파는 세지 않았고, 어린 아이와 여자의 수도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60만명이 넘은 숫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놀라운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또 엄청난 사람들이 태어나고 태어나서 이 세상을 채우고 있으니 하나님의 약속은 정말 놀랍고 실제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레위기 26장 1~13절은 하나님께 복종하여 얻는 상에 대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이어서 14~39절에는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아 받는 벌에 대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몰라서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지요.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지! 반대로 하나님의 형벌은 얼마나 무섭고 괴로운 것인지!
성경에는 이렇게 명확하게 두 갈래 길이 나옵니다. 신명기에 가면 이것이 더 확실하게 나올텐데, 아무튼 우리 앞에는 죄와 사망과 저주의 길이 있고, 또 한편 순종과 생명과 축복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명확하게 계시되어 있는 성경을 읽었은즉 순종과 생명과 축복의 길을 선택하는 지혜가 내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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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레위기 통독에서는 남자의 몸에 관한 규례, 여자의 몸에 관한 규례, 속죄일에 관한 규례, 피에 관한 규례, 남녀 관계에 관한 규례, 그 밖의 규례가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규례들을 가르쳐주시며 여러가지 죄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력하게 경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 이전에 하나님께 쫓겨난 나라들이 바로 그런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몸을 더럽혔고 그 땅도 저주를 받았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레 18:24) 너희는 이러한 죄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저질러서 몸을 더럽히지 마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 낸 나라들이 바로 이런 짓을 함으로 몸을 더럽혔다. (레 18:25) 그리고 그 땅도 더럽혀졌다. 그래서 내가 그 죄 때문에 그 땅에 벌을 내렸고, 그 땅에서 그 백성을 쫓아 낸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가르침과 규례에 복종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고 그 땅도 부정해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레 18:26) 너희는 내 가르침과 규례에 복종하거라. 너희는 이런 역겨운 죄를 하나라도 짓지 마라. 이스라엘 백성이나 그들 가운데 사는 외국인도 그런 죄를 짓지 마라. (레 18:27) 너희보다 앞서 그 땅에 살던 백성은 이 모든 역겨운 죄를 저질렀으므로 그 땅이 부정해졌다.
그래서 그들 또한 이스라엘 백성보다 앞서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처럼 죄를 지어 몸을 더럽히고 그 땅을 부정하게 만들면, 그들을 쫓아내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 또한 쫓겨날 것임을 분명하게 경고하셨습니다.
(레 18:28) 만약 너희가 이런 짓을 하면, 너희도 그 땅을 부정하게 만들고 말 것이다. 그러면 나는 너희보다 앞서 그 땅에 살던 사람을 쫓아 냈듯이, 너희도 쫓아 낼 것이다. (레 18:29) 이런 역겨운 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질 것이다. (레 18:30) 너희보다 먼저 그 땅에 살던 백성이 행했던 역겨운 풍속을 하나라도 행하지 마라. 이런 역겨운 죄를 저질러서 스스로 더럽히지 마라. 너희는 내 가르침에 복종하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가르침과 규례를 기억하고 잘 지킬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레 19:37) 나의 모든 가르침과 규례를 기억하고 잘 지켜라. 나는 여호와이다.”
(레 20:7) 내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레 20:8) 내 율법을 기억하고 잘 지켜라. 나는 여호와이다. 내가 너희를 거룩하게 했다.
(레 20:22) 나의 모든 가르침과 규례를 기억하고 잘 지켜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인도해 갈 그 땅이 너희를 쫓아 내지 않을 것이다.
(레 20:26) 나 여호와가 거룩하므로 너희도 내 앞에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 나는 너희를 다른 백성과 구별하여 내 백성으로 삼았다.
이러한 말씀들을 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규례를 주신 것은 철저히 이스라엘 백성을 다른 백성과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나라들과 다른 이유는 유일하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규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레 22:31) 내 명령을 잘 기억하고 그대로 지켜라. 나는 여호와이다. (레 22:32)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 너희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내가 거룩하다는 것을 드러낼 것이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다. (레 22:33)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기 위해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여호와이다.”
위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율법과 규례를 주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세상으로부터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잘 기억하고 그대로 지킬 때에만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동일한 것 같습니다.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우리가 구약시대처럼 율법과 규례의 문장을 하나 하나 따지면서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자 주셨던 율법과 규례의 본질은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으며, 성령의 요구를 따라서 살면 율법과 규례의 본질을 지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롬 8:4) 이렇게 하여 죄의 본성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성령에 따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로운 요구들이 완벽히 이루어졌습니다. (롬 8: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롬 7:7)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이 없었다면, 나는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이 “탐내지 마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내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롬 7:13) 그렇다면 선한 것이 나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었단 말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죄가 죄인 것으로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 죄는 선한 것을 이용하여 나에게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리하여 죄는 계명을 통해 한층 더 죄의 참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사람에게 성령이 내주하게 되시면 이제는 기록된 문자에 따라 율법을 지켰다 하는 행위만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기계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함을 입고 성령의 새로운 방법을 따라 하나님을 진심으로, 자원하여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롬 7:6)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를 가둔 율법에 대해 죽고,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록된 문자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로부터 거룩히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규례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룩히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은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고 그 명령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잘 기억하고 그것을 지킬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냥 예수님 믿는다고 말만 하고,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말씀을 따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것 내지는 인간적인 수준에서 하는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가 지킬 수 없을 만큼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히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잘 기억하고 그대로 지킬 때에만 유효하다 하신 것과 동일한 맥락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간다고 해서, 이미 율법이 폐해진 것처럼 여기지 않고,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성령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지킴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요구하는 본질을 이루는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통독 말씀에서는 모세가 하나님께 가르침 받은 대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제사장 위임식을 행하였습니다. 모세는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 과정을 이루었습니다.
(레 8:9) 모세는 아론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관 앞면에 금패, 곧 여호와의 성결패를 달아 주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했습니다. (레 8:13) 모세는 아론의 아들들을 앞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속옷을 입혀 주고, 띠를 띠워 주고, 머리띠도 감아 주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했습니다.
모세는 제사장 위임식을 끝내고 이렇게 당부하였습니다.
(레 8:33) 제사장으로 구별하여 세우는 위임식은 칠 일 동안 계속될 것이오. 그대들은 그 기간이 끝날 때까지 회막 입구 밖으로 나가면 안 되오. 구별하여 세우는 위임식이 끝날 때까지 거기에 머무시오. (레 8:34) 여호와께서는 그대들의 죄를 씻는 일을 오늘처럼 하라고 명령하셨소. (레 8:35) 그대들은 회막 입구에 머물러 있어야 하오. 칠 일 동안 밤낮으로 거기에 머물러 있으시오. 만약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그대들은 죽을 것이오. 여호와께서 나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소.” (레 8:36) 그리하여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그대로 따랐습니다.
모세는 이것이 ‘제사장으로 구별하여 세우는 위임식’이라고 하였으며, 제사장으로서 죄를 씻는 일을 오늘처럼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음을 전하고, ‘구별하여 세우는 위임식이 끝날 때까지 7일 동안 밤낮으로 회막 입구에 머물러 있으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부하기를 “만약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그대들은 죽을 것이오. 여호와께서 나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소.”라고 전했습니다.
7일 동안 제사장들이 거룩히 구별되는 기간을 거친 후, 드디어 8일째 되는 날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부르고 첫 제물을 바치게 됩니다.
(레 9:7)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제단으로 가까이 가, 거기에서 속죄 제물과 번제물을 바치십시오. 그렇게 하여 형님의 죄와 백성의 죄를 씻는 예식을 행하십시오. 백성을 위해 제물을 바쳐서, 그들의 죄를 씻는 예식을 행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십시오.”
그 모든 과정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루어졌고, 여호와의 영광이 모든 백성에게 나타났습니다.
(레 9:23) 모세와 아론은 회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다시 바깥으로 나와서 백성을 축복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영광이 모든 백성에게 나타났습니다.
(레 9:24) 여호와에게서 불이 내려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불살랐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땅에 엎드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인도하에 속죄제와 번제, 화목제를 다 바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이제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제사를 드리나보다 했는데, 바로 10장에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납니다.
(레 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향을 피울 향로를 가지고 불을 피운 다음에 거기에 향을 얹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세가 사용하라고 명령한 불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레 10:2)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내려와 나답과 아비후를 삼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죽었습니다.
바로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아서 그만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내려와 나답과 아비후를 삼켰고 그들은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에 대해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레 10:3) 그러자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가까이 나아오는 사람에게 나의 거룩함을 보이겠고, 모든 백성 앞에서 내가 영광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일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자 아론은 자기 아들들의 죽음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셨고, 하나님의 엄위하심이 어떠한 것인지 바로 그 자리에서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에게 명하여 나답과 아비후의 주검을 진 밖으로 옮겼고, 모세는 아론과 그의 남은 아들들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말합니다.
(레 10:6) 모세가 아론과 그의 다른 아들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말했습니다.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마십시오. 옷을 찢거나 머리를 풀지도 마십시오. 만약 그렇게 하면 그대들도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모든 백성에게 노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들의 친척인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여호와께서 나답과 아비후를 불살라 죽이신 일에 대해 슬피 울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눈 앞에서 아론에게는 아들들이 죽었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는 형제가 죽었는데, 이것에 대해서 절대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말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죽을 것이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모세는 이 상황에서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엄청 서운할? 것 같은 말을 합니다.
(레 10:7) 그대들은 회막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만약 밖으로 나가면 그대들은 죽을 것입니다. 그대들은 여호와께서 특별한 기름을 부어, 여호와를 섬기도록 임명하신 구별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론과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모세가 명령한 대로 했습니다.
모세의 이 말을 들으면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일반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으로서, ‘여호와께서 특별한 기름을 부어, 여호와를 섬기도록 임명하신 구별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첫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끝낸 후에, 여호와의 명령 대로 하지 않을 때는 죽게 될 것이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답과 아비후가 ‘모세가 사용하라고 명령한 불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게 된 것이요, 그 죽음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죽음이었기에 이제는 제사장으로서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것에 대해 슬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레 10:8)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레 10:9) “너와 네 아들들은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마라. 마시기만 하면 너희는 죽을 것이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이다. (레 10:10) 너희는 성물을 거룩하지 않은 것과 구별하여라. 너희는 또한 깨끗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여라. (레 10:11) 너희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모든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라.”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을 통해 명확하게 보여주시고, 제사장으로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다시 당부해주셨습니다. 혹자는 이것을 보며 ‘하나님은 참 너무하신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에 이어지는 내용들을 보면 하나님이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에 대해서 ‘인간적인 관점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예전에 성경 말씀을 잘 모를 때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고요. (어떻게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지?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그러나 오늘의 말씀을 읽으며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셔야겠다는 다짐을 더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계속해서 용서해 주시고 인내해 주시는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이 정도 쯤이야’하는 자리는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보게 되거든요.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 이후에, 레위기는 10장부터 깨끗한 짐승와 부정한 짐승에 관한 규례, 산모에 관한 규례, 피부병에 관한 규례, 옷이나 가죽에 생긴 곰팡이에 관한 규례, 피부병에서 깨끗해지는 일에 관한 규례, 집에 생기는 곰팡이에 관한 규례가 이어집니다.
이 내용 중에 계속해서 반복되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제사장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아라,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예식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서 그의 죄를 씻어 주어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는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 율법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으로부터 거룩히 구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아론과 그의 자손들은 제사장으로 구별하여 세우셨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특권도 있었고, 하나님이 기업이요 분깃이 되는, 즉 삶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있었으나 그만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으로서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따랐습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일만 보아도 그것은 정말로 지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당장 ‘죽을 수 있을 만큼’의 엄위한 책임과 의무였던 것이지요.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 또한 제사장이라 칭하여 주십니다.
(벧전 2:9)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의 제사장입니다. 또 거룩한 나라이며, 하나님께서 홀로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알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어두움 가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셨습니다. (벧전 2: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전에는 은혜를 몰랐지만, 지금은 은혜를 받고 누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제사장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으로 해석되기도 하나,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부분에서 신약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 각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오늘의 통독 말씀을 읽으면서, 제사장의 직분이라는 것이 얼마나 세상으로부터 거룩히 구별되어야만 하는 자리인지 새기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엄위하심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것인지, 얼마나 더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는 누구에게나, 그래서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미쳤고, 오늘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모든 죄를 용서 받는다는 그 감사함이 때로는 나에게 죄에 대해 무딘 감각을 주고, ‘그저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만을 강조하는 세태 속에서 사실상 내 안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구약 시대에 비하면 참으로 많이 흐려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와중에 오늘의 말씀은 참으로 저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듭니다. 특히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세상이 주는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명하심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 이 때에, 잘못된 불을 사용해 그 자리에서 죽어야 했던 나답과 아비후를 보며, 그리고 제사장의 직분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보며,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눅12:48)이라 하신 말씀이 생각나 ‘더욱 구별되어야 하는 나의 책임과 의무’를 살피게 됩니다.
정말로 더 하나님을 경외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더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를 죄에서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구원에 더 가깝게 할 것입니다.
말씀하신 즉, 이루시는 하나님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위기 11: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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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애굽기가 끝나고, 새해 통독 결심을 무너뜨리기 십상인 레위기에 진입했습니다! 레위기는 어찌보면 반복적인 제사법이 나와서 읽는 입장에서는 다소 지겹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다보니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레위기의 제사법은 다가올 완전한 예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부분이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어주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해주신 것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아주 은혜가 되는 자리들이 많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항상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전에 분명히 읽었던 부분인데 읽을 때마다 성령님은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레위기도 매번 통독 때마다 빨리 읽고 넘어가는데 의의를 두는 경우가 많았는데(물론 그러면서 그때마다 주신 은혜가 있었지만^^;) 오늘은 또 새로운 오늘의 은혜를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주님!
오늘은 통독 가운데 제 눈에 가장 크게 들어온 구절이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레 1:9)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짐승의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어 주면, 제사장은 짐승 전체를 제단 위에서 태워 번제로 드려라. 이것은 불로 태워 바치는 화제이며, 그 냄새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
(레 1:13)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짐승의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어야 하며, 제사장은 짐승 전체를 제단 위에서 태워 번제로 드려라. 이것은 불로 태우는 화제이며, 그 냄새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
(레 1:17) 그런 다음에 제사장은 새의 날개를 찢어라. 하지만 완전히 찢어서 몸이 두 동강이 나게 하지 말고, 그 새를 제단에 피운 장작불에 태워 번제로 드려라. 이것은 화제이며, 그 냄새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
(레 2:2) 그런 다음에 그것을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에게 가져가거라. 제사장은 기름과 섞인 고운 가루 한 줌과 모든 향을 집어서 그 제물 전체를 여호와께 바쳤다는 표시로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워라. 그것은 화제이며 그 냄새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
(레 3:5) 그러면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은 그것들을 제단에 피운 장작불 위에 놓인 번제물 위에 올려 놓고 불태워라. 그것은 화제이며 그 냄새가 여호와께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
(레 3:16) 제사장은 그것들을 제단 위에서 태워 바쳐라. 그것이 화제이며, 그 냄새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다.
이것 외에도 아주 많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 "그 냄새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법을 가르쳐주시고, 그 제사의 법도대로 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이 통독을 하면서 정말 늘 알던 부분이지만 다시금 제 마음을 새롭게 했던 것은 "제물을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제사(예배)는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 앞에 지금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룩한 산제물인지를 살펴보기 보다는 "오늘은 어떤 은혜를 받을까? 오늘은 어떤 말씀이 내게 위로와 힘이 될까? 오늘은 주님이 나를 어떻게 만족시켜주실까?" 이런 것들을 먼저 구하게 되는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그저 "내가 예배를 드렸다, 내가 하나님께 할 바를 했다"하는 것으로 내 수준에서, 내 만족에서 그치는 예배를 드렸던 것은 아닌지, 오늘의 통독 말씀을 통해 돌아보며, 정말로 이제는 내가 주님께 올려드리는 예배가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고 주님께서 만족하여 기쁘게 받으실만한 예배로 드려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예배의 기준은 철저히 그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만족하고 내가 드렸다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게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개역개정) 아멘! 아멘!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제물을 바치며 그것을 우상삼아 즐기고 놀았습니다.
(출 32:6) 이튿날 아침, 백성은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백성은 앉아서 먹고 마시다가 일어나서 마음껏 즐기며 놀았습니다. (출 3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장 이 산에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 낸 네 백성이 끔찍한 죄를 짓고 있다. (출 32:8) 그들은 내가 명령한 일들을 벌써부터 어기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금송아지를 만든 뒤 그 송아지를 섬기며 거기에 제물을 바쳤다. 백성은 ‘이스라엘아, 이것이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너희 신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참지 못하시고 노여움이 너무 커서 그들을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 32: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백성이 얼마나 완고한 백성인가를 보았다. (출 32:10) 그러니 이제는 나를 말리지 마라. 나의 노여움이 너무 크므로, 나는 그들을 멸망시키겠다. 하지만 너만은 살려 두어 큰 민족을 만들어 주겠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모세 자신에게 온갖 불평과 불만의 말을 쏟아내는 것을 당해왔기 때문에, 어찌보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못 참으시고 '그들을 멸망시키겠다, 그러나 너만은 살려 두어 큰 민족을 만들어 주겠다'라는 말이 되려 반갑고 속 시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람의 생각으로 그것이 좋다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 앞에 매달렸습니다.
(출 32:11)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주님의 백성에게 노여워하십니까? 주님께서는 크신 능력과 힘으로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시지 않으셨습니까? (출 32:12) 만약 주님께서 노하시면, 이집트 백성이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것은, 그들을 산에서 죽이고 이 땅 위에서 멸망시키기 위해서였구나’ 하고 말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십시오.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괴로움 당했던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이 자기는 살려주시겠다 하는 말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받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출 32:13) 주의 종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약속한 이 모든 땅을 너희 자손에게 주어 그 땅을 영원히 물려받게 할 것이다’ 하고 주님 자신을 걸고 맹세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약속을 지켜주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되게 해달라고 모세는 하나님께 간청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하나님 자신을 걸고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약속을 지켜달라고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의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
(출 32:14) 그러자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리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처음에 뜻하셨던 것과는 달리 자기 백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모세가 한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삶'이지 않은가 오늘의 통독 가운데 새기게 됩니다. 나의 만족과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 약속을 하나님께 상기시켜 드리는 것, 하나님께서 모세를 친구와 같이 여기셨다 하였는데, 참으로 하나님께 이런 사람이 되고 싶네요.
그러려면 먼저는 하나님께서 해주신 약속을 기억할 수 있어야 되겠고, 그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매달려야겠다는 결단이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그냥 주신 것이 아님을 다시 새깁니다.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라고 구한 제자들에게 주신 주기도문을 다시 마음에 새기고, 수시로 무시로 주기도문을 주님께 올려드려야겠다고 결단합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