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HY Choi https://www.shutterstock.com/g/matthew7_21



출애굽기 20장부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비롯해 종에 관한 법, 폭행에 관한 법, 소유주의 책임에 관한 법, 배상에 관한 법, 여러가지 관계에 관한 법 등의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지기 전에,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죄를 짓고 있었으나 그것이 죄인줄 모르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출애굽을 하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놀라운 분이신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유일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체험했으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의 생활이 힘들다고 모세에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대들기까지 하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출 15:24)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한단 말이오?” 하고 따졌습니다.

(출 16:2) 그 때에 모든 이스라엘 무리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출 16:3)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죽이시는 것이 차라리 더 좋을 뻔했소. 이집트에서는 고기 삶는 솥도 곁에 있었고, 빵도 배부르게 먹었소. 그런데 당신들은 우리를 이 광야로 이끌어 내서 우리를 굶어 죽게 하고 있소.”

(출 17:2) 그들은 모세에게 대들며 “우리에게 마실 물을 주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왜 나에게 대드시오? 왜 여호와를 시험하시오?”
(출 17:3) 하지만 백성들은 목이 몹시 말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왔소?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과 우리의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데려왔소?”

(출 17:7)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가, 계시지 않는가 하고 여호와를 시험했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맛사 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백성이 다투었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므리바 라고도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죄를 짓고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율법을 주시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죄를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서였던 것이지요. 

(롬 3:20, 개역개정)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쉬운성경)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롬 7:7)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이 없었다면, 나는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이 “탐내지 마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내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이 없었다면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를 멀리 하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라는 것이 오늘의 통독 가운데 더욱 명확하게 깨달아졌습니다. 


율법은 이처럼 선한 것이었으나 율법에 의한 예물과 제사로는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속까지 깨끗하게 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로 완전하고 거룩한 제사를 영단번에 드리게 하셨고, 율법은 완전한 것 즉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만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히 9:9) 이것은 현재를 위한 비유입니다. 예물과 제사로는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속까지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히 9:10) 이것은 단지 먹고 마시고 여러 가지 몸을 씻는 등의 예식으로서, 하나님의 새 법이 올 때까지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킨다는 행위만으로는 결코 의로워질 수 없기에(예물과 제사로는 마음 속까지 깨끗하게 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인간의 마음 속 죄까지도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 당시에 수많은 기적과 이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이집트의 노예신분에서 벗어나 구원의 길로 들어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수많은 불평과 불만과 불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볼 때에 참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창 6:5, 개역개정)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렘 13:23, 쉬운성경) 에티오피아 사람이 피부 색깔을 바꿀 수 있겠느냐? 표범이 그 얼룩을 바꿀 수 있겠느냐? 만약 바꿀 수 있다면 언제나 악한 일만 하는 너희도 착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나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지게 하시고 나 대신 심판받지 않으셨더라면 참으로 소망없는 나는 계속 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결코 나아갈 수 없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율법을 온전케해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아멘! 아멘! 나는 공로 없습니다!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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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하나님의 목적은 '나의 백성으로 하여금 나(여호와)를 예배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출 7:14) <첫 재앙-물이 피로 변하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파라오는 고집이 세서 백성을 내보내려 하지 않는다.
(출 7:15) 아침에 파라오가 나일 강으로 나올 것이니, 너는 가서 강가에서 그를 만나라. 뱀으로 변했던 지팡이를 가지고 가거라.
(출 7:16) 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셨습니다. 주님께서 내 백성을 광야로 보내서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지금까지 왕은 이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출 8:1) <둘째 재앙-개구리 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파라오에게 가서 전하여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내보내서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

(출 8:20) <넷째 재앙-파리 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파라오를 만나라. 그가 강으로 나올 것이니, 그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

(출 9:1) <다섯째 재앙-짐승의 죽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파라오에게 가서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

(출 9:13) <일곱째 재앙-우박>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파라오에게 가서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

(출 10:3)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언제까지 내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지지 않을 것이냐? 내 백성을 보내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


오늘 통독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파라오와 이집트 백성들에게 열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알게 하셨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붙들고 있던 세상 권세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나의 구원을 놓고 볼 때에도 죄에서 나를 건져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입은 것이며, 구원이라는 것은 나로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지만 이것은 결코 나의 '안위'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또한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구원해주신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되게 하심'인것처럼 나를 세상으로부터 구원해주신 목적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되게 하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으로부터 건짐받은 후,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물에서 건져놨더니 도리어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되어 세상을 섬겼던 모든 것에서 돌이켜 나의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될 것을 더욱 굳게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나는 하나님의 자비로써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이 마땅히 드려야 할 영적인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롬 12:1~2)

I appeal to you therefore, brothers,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acceptable to God, which is your spiritual worship.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al of your mind, that by testing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what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Roman 12:1~2)

 

 

오늘 출애굽기 통독에 들어가면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상 자신들의 죄로 인해 결국에 세상(이집트)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영혼들의 울부짖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출 2:23) 세월이 흘러서 이집트 왕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강요에 의해 너무나 힘겹게 일했기 때문에 신음했습니다. 그들이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출 2:24)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셨습니다.
(출 2: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보시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혹자는 이 말씀을 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와달라고 부르짖을 때까지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왜 하나님은 그제서야 그들을 도와주시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계획하고 계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아브람이었던 때에 벌써 그의 후손이 나그네가 되어 낯선 땅에서 떠돌게 될 것이며 종으로 400년을 힘겹게 지내다가 그 나라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고 이미 약속하신 바가 있으셨습니다. 

(창 15:1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잘 알아 두어라. 네 자손은 나그네가 되어 낯선 땅에서 떠돌게 될 것이다. 그 땅의 사람들이 네 자손을 종으로 삼고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힐 것이다.
(창 15:14) 그러나 네 자손을 종으로 삼은 그 나라에 내가 벌을 주리니, 네 자손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그 나라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창 15:15) 아브람아, 너는 오래 살다가 평안히 네 조상에게 돌아갈 것이다.
(창 15:16) 네 자손은 손자의 손자 때가 되어서야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텐데, 이것은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은 벌을 받을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서 보면,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은 벌을 받을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때를 인내하시며 기다리셨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때가 이르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그곳에 있던 가나안 백성들에게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 6:2) 하나님께서 또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이다.
(출 6:3)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내 이름을 여호와라고 알리지는 않았다.
(출 6:4) 나는 또 그들과 언약을 세워서, 그들이 나그네처럼 살고 있던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출 6:7) 나는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며, 너희는 내가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이집트 사람들이 너희에게 강제로 시키는 힘든 일에서 너희를 구해 낼 너희의 하나님이다.
(출 6: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손을 들어 약속했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리니, 나는 그 땅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나는 여호와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죄의 대가로 주어진 세상에서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영혼들을 하나님은 계속해서 주목하고 계시고 어찌하든 가나안 땅(결국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애타는 마음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인간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죄의 대가를 치르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려고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통독에서는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모세와 아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전도자를 보내시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통독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킬 사명을 주시고, 그에게 파라오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라고 하시는 장면과 모세가 하나님께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나를 보낸 하나님을 누구라고 해야하느냐 등등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끊임없이 강퍅한 이스라엘 백성과 그럼에도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야 하는 전도자의 마음을 또한 헤아리게 되는 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영혼들을 향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내가 먼저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또다른 영혼들에게 전하는 전도자가 되려면 정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에 젖어야만 그 과정이 힘겹지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십자가에서 기꺼이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것같이, 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불타는 사랑을 가진 전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가 8:6) 

Place me like a seal over your heart, like a seal on your arm; for love is as strong as death, its jealousy unyielding as the grave. It burns like blazing fire, like a mighty flame. (Song of Songs 8:6)

Photo by HY Choi https://www.shutterstock.com/g/matthew7_21

 

요셉이 연단을 받았던 그 긴 세월 동안, 요셉 뿐만 아니라 요셉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 야곱에게도 연단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오늘 통독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는 요셉을 시기하여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요셉을 팔기까지 했던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이 사라진 그 오랜 세월 동안 많은 후회와 회개와 돌이킴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형제들의 대화와 유다가 요셉에게 간청한 내용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창 42:21) 그들이 자기들끼리 말했습니다. “우리가 동생에게 한 일 때문에 이런 벌을 받는가 보다. 우리는 동생이 고통을 당하면서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보면서도 동생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창 42:22) 그러자 르우벤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아이를 해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한 일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런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창 44:30) 그러니 저희가 그 막내 동생 없이 집에 계신 아버지께 돌아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저희 아버지에게 그 아이는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아들입니다.
(창 44:31) 아버지께서 만약 그 아이가 저희와 함께 오지 않는 것을 아신다면 아버지는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는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죄인이 되고 맙니다.
(창 44:32) 저는 아버지께 그 아이를 무사히 돌려 보내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만약 제가 그 아이를 아버지에게 돌려 보내지 못하면, 두고두고 그 죄값을 받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창 44:33) 그러니 제발 저를 남겨 두어 종으로 삼으시고, 그 아이는 형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창 44:34) 그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는 한, 저는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슬퍼하시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결국 요셉은 이러한 유다의 말을 듣고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집트의 총리인 자신이 바로 형들의 동생 요셉이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한편, 야곱의 경우도 요셉을 드디어 만나고 파라오에게 갔을 때 고통스러운 삶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자신의 꾀와 용기로 살았던 야곱이 참으로 많이 변화되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창 47:9) 야곱이 파라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삼십 년이 되었습니다. 제 조상들보다는 짧게 살았지만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기나긴 세월 동안 무슨 일을 만나든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창 46:1) 그리하여 이스라엘이라고도 부르는 야곱은 가지고 있던 것을 다 챙겨서 길을 떠났습니다. 야곱은 브엘세바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야곱은 자기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습니다.
(창 47:31) 야곱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여라.” 이에 요셉은 그렇게 하겠다고 야곱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침대 맡에 엎드려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요셉을 미리 이집트로 보내어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준비하심이 있으셨지만 

(창 45:5) 하지만 이제는 염려하지 마세요. 저를 이 곳에 판 일로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저를 형님들보다 먼저 이 곳으로 보내셔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하신 것이니까요.
(창 45:6) 벌써 이 년 동안 땅에서는 식물이 자라지 않고 있어요. 더구나 앞으로도 오 년 동안은 심지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할 것입니다.
(창 45:7)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형님들과 형님들의 자손이 살아 남도록 하려고, 저를 먼저 이 곳에 보내신 것이에요.

동시에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스라엘)과 그 형제들의 삶 또한 연단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오늘의 통독에서도 뵐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이처럼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통독을 하면서 조급해하지말고 끊임없이 주님께 연단되기를, 빚어지기를 구하며 인내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Photo by HY Choi


오늘은 하나님과 함께 하며 형통했던, 그 유명한 요셉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창 39:2, 개역개정)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2, 쉬운성경)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요셉이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주인인 이집트 사람 보디발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창 39:5) 그래서 요셉은 집안 일과 보디발이 가진 모든 것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보디발이 가진 모든 것, 집에 있는 것이나 들에 있는 모든 것에 복을 주셨습니다.


(창 39:21)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셨으며, 요셉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간수장의 마음에 들게 하셨습니다.
(창 39:22) 간수장은 요셉에게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를 맡겼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맡았습니다.
(창 39:23) 간수장은 요셉이 하는 일에 조금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요셉이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하게 만드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서 이집트까지 갔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정말 억울하고 힘든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있을 때에도, 왕의 죄수들을 넣는 감옥에 있을 때에도 세상은 알 수 없는 '형통함'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곳도 아닌, 상상도 못해봤을 다른 나라에 열두살의 나이에, 그것도 피를 나눈 형제들에게 팔려서 가게 되었던 요셉...남의 집에서 종살이 하는 것도, 억울한 모함에 의해 감옥살이 하는 것도 어찌 형통하다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의 그 고난의 시기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매 형통하였더라"라고 표현합니다. 아마도 요셉은, 그의 상황과 환경은 어렵고 힘들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먼저는 그의 영혼이 그 시기를 견딜 수 있었고 그것을 성경에서는 '형통했다'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종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보디발은 요셉에게 맡겼고, 왕의 죄수들을 넣는 감옥에서도 간수장이 요셉을 마음에 들어하여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를 맡기기까지 하였으니 신분은 종이요, 죄수였으나 그가 받은 대우와 처지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매 진실로 형통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요셉이 받았던 연단은 결코 그의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요셉을 이집트의 높은 자리에 앉히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 통독을 하면서 비록 요셉이 어려서부터 다른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고 이집트로 팔려가게 되었지만 하나님께는 온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서 큰 그림이 있으셨고 요셉은 그 그림의 한 조각이었던 것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요셉을 중심으로만 보면 참으로 억울하기 그지 없는 삶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요셉의 삶을 보면, 비록 형들이 그를 이집트로 보내는데 악한 통로로 쓰임은 받았지만(그들이 요셉을 팔지 않았더라면 요셉은 다른 방법으로 이집트로 보내졌겠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결국에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로 가게 되고, 나중에 출애굽을 하게 되고, 가나안 땅으로 향해 가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읽으면서, 내 삶의 히스토리만 단편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나의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한 조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순종하여 주님의 뜻을 도모할 것인지 이것을 더욱 구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Photo by S. Fukaura in Perth


오늘 통독에서는 야곱의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야곱은 삼촌 라반이 수차례 품삯을 바꾸며 아침 저녁으로 일을 시켰던 20년 동안 엄청난 고생을 했고, 자기가 속였던 형 에서를 다시 만날 것을 두려워 했으며, 딸 디나의 사건 때문에 시므온과 레위가 하몰과 세겜을 비롯해 그 성의 사람들을 다 죽였을 때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에게도 분명히 고난이 있었고, 모든 인생이 그렇듯이 그 고난은 자신에게 가장 힘든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통독에서 보면 야곱은 그 고난 앞에서 낙심하고 좌절한 채로 그냥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예배의 제단을 쌓았으며, 
하나님을 붙들고 복을 달라고 씨름하였습니다. 

(창 31:3, 쉬운성경)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조상들이 사는 땅으로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창 32:9) 야곱이 말했습니다. “제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제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네 나라, 네 집으로 돌아가거라. 네게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창 32:10)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온갖 은혜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처음 요단 강을 건넜을 때, 저에게는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에게는 재산을 둘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많은 재산이 있습니다.
(창 32:11) 제발 저를 제 형 에서로부터 구해 주십시오. 에서가 와서 저와 아이들의 어머니와 아이들까지 해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창 32:12)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겠다. 내가 네 자손을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도 없이 많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창 32:26) 그 사람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날이 새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지만 야곱이 말했습니다. “저에게 복을 주시지 않으면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창 32:27) 그 사람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야곱입니다.”
(창 32:28)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 이다. 네가 하나님과 씨름했고, 사람과도 씨름을 해서 이겼기 때문이다.”

(창 33:18) 야곱은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 땅 세겜 성에 무사히 이르렀습니다. 야곱은 성 동쪽에 장막을 쳤습니다.
(창 33:19) 야곱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은 돈 백 개를 주고 샀습니다.
(창 33:20) 야곱은 그 곳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 이라고 지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야곱이 라반을 잘 떠날 수 있게 해주셨고, 
야곱을 향한 에서의 증오를 없애주시고 관계를 회복시켜주셨으며, 
가나안 족속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야곱의 아들들을 쫓아오지 못하게(창35:5) 해주셨습니다.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큰 깨달음 혹은 믿음? 교훈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 바로 다음 구절인 것 같습니다. 

(창 35:3) 여기를 떠나 벧엘로 가자. 그 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을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는 내가 괴로움을 당할 때에 나를 도와 주셨으며,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와 함께 계셨다.”

오늘의 통독을 하면서
고난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자!
내게 길이 없고 방법이 없을 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더욱 매달리자!라고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고, 그 약속은 이미 성경에 수없이 나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 말씀에 따른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야곱의 삶을 통해 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내가 괴로움을 당할 때 나를 도와주시고,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와 함께 계실 하나님!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나의 열심이 결코 흐려지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photo by HY Choi

 

오늘 말씀에서는 아브라함이 자기 종 엘리에셀을 메소포타미아로 보내어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찾아오라고 하는 내용과 야곱과 에서의 탄생, 야곱이 레아와 라헬과 결혼한 이야기가 주로 나옵니다. 

창세기의 내용은 장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서, 사실 통독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곤 합니다. 더 읽고 싶지만 마치 다음을 위해서 아껴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만큼 ㅎㅎㅎ 진도가 잘 나가지요~ (이러다가 레위기에 들어가면 다들 힘들어한다는....ㅋ)

오늘 말씀에서 크게 두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는데, 첫번째는 엘레에셀의 신중함 VS 에서의 신중치 못함, 두번째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나의 선택에 대한 부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엘레에셀의 신중함(말씀을 새겨듣고 붙듬) VS 에서의 신중치 못함(약속 따윈 다 잊어버림)이 오늘따라 더욱 부각되어 보였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아들의 아내감을 찾아오라고 보내면서 했던 말을 아주 신중하게 듣고 새겼습니다. 

(창 24:6, 쉬운성경) 아브라함이 종에게 말했습니다. “안 된다. 내 아들을 그리로 데려가면 안 된다.
(창 24:7) 여호와께서는 하늘의 하나님이시다. 주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고향, 내 친척의 땅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리고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셨다. 주께서 천사를 네 앞에 보내셔서 내 아들의 아내를 데려오는 일을 도와 주실 것이다.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해 아내를 골라라.
(창 24: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기를 원치 않으면, 너는 이 약속에 책임이 없다. 하지만 내 아들을 그리로 데려가서는 안 된다.”

그리고 리브가를 만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여러 방법으로 리브가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삭의 짝이 맞는지를 시험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엘레에셀은 주인의 명령에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반해, 뒤이어 나오는 에서의 모습을 보면 맏아들의 권리(장자권)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붉은 죽을 먹겠다고 맏아들의 권리를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창 25:29) 어느 날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는데 에서가 들판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에서는 몹시 배가 고파서
(창 25:30)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그 붉은 죽을 좀 다오. 내가 배가 고프구나.” 이것 때문에 에서는 ‘붉은’이란 뜻에서 에돔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창 25:31) 그러자 야곱이 말했습니다. “먼저 나에게 맏아들의 권리를 파세요.”
(창 25:32) 에서가 말했습니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그까짓 맏아들의 권리가 무슨 소용이냐?”
(창 25:33) 야곱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권리를 나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세요.” 에서는 야곱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이렇게 에서는 맏아들의 권리를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창 25:34) 그러자 야곱이 에서에게 빵과 죽을 주었습니다. 에서는 그것을 먹고 마신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에서는 맏아들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에서는 결국 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새기지 못하고 있었기에 당장 내 육신의 만족을 위하여 맏아들의 권리를 파는 엄청난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습니다. 물론 나중에 야곱이 자신을 속였다고 심히 분노하지만 장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새카맣게 뒤로 한채 먹을 것과 장자권을 맞바꾼 것은 분명히 에서 자신이었습니다. 신중하게 말씀을 기억하고 새겼던 사람(엘리에셀)과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고 신중치 못하게 자신의 육신의 욕망이 앞섰던 사람(에서)은 이토록 다르다는 것을 두 인물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통독 가운데 야곱과 에서, 라헬과 레아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은 불공평하신가? 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그런 모양으로, 그런 환경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아니신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리브가의 태중에서 이미 야곱과 에서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창 25:21) 이삭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아내를 위해 여호와께 기도드리니, 여호와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어 주셨으므로, 리브가가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 25:22) 그런데 리브가의 뱃속에 있는 아기들이 서로 다투었습니다. 리브가는 “어찌하여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생각하며 여호와께 나아가 여쭈었습니다.
(창 25:23) 여호와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나라가 네 몸 안에 있다. 두 백성이 네 몸에서 나누어질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먼저 다 정하시는 것인가?'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게 가능하니 하나님이신거겠지요?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롬 9:10) 그뿐만이 아닙니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에게서 아이를 임신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롬 9:11)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그들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시는 목적을 굳게 세우기 위해,
(롬 9:12) 리브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불러 주시는 분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롬 9:13) 이것은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라고 기록된 대로입니다.
(롬 9:14)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공정하지 못하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롬 9: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자 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롬 9:16) 그러므로 모든 것이 사람의 요구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태어나는 환경이나 상황은 모두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내가 어떤 부모를 만나고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고 어떠한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는지는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고 나서야 그렇게 '되어진' 것을 알게 되니까요. 

그런데 분명히 태어나는 조건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지만 매순간 삶의 선택은 나의 몫이라는 것을 오늘 통독 가운데 더욱 새기게 되었습니다. 

에서는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먹을 것에 장자권을 팔았고,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복을 다 받게 된 것을 알자 그를 미워하며 죽이려 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 아니냐? 하실 수도 있지만...아무튼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매 순간 선택을 이루어가지요.)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라헬과 레아의 이야기를 보면, 이 두 여인은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듯 자녀를 낳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많은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을 이 두 여인과 두 몸종들을 통해 야곱이 열두 아들을 갖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이루어 성취하셨습니다. 그 여인들도 그런 경쟁을 통해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생기게 될 줄은 몰랐겠지요.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피조물이 어찌 창조주의 뜻과 계획을 감히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태어나는 것조차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걸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매 순간 삶 속에서 내가 무엇을 믿을지, 무엇을 행할지 그 선택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내가 마땅히 행할 바를 찾을 수는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 오늘 내가 처한 상황과 형편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 어떤 존재가 되는가 하는 것이라고 오늘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뜻에 순복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인가? 아니면 계속 남탓, 상황 탓을 하며, 원망과 증오로 나를 채우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절대로 동행할 수 없는 죄인으로 살 것인가? 

이 선택은 내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해도 제가 마땅히 예수님을 믿는 가운데 행할 바를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것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

photo by HY Choi

 

오늘의 통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신을 향한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대하16:7)의 열심"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먼저 듣고 하나님께 그 땅에 의인이 50명이라도 있으면, 45명, 40명, 30명....단 10명이라도 있으면 심판하지 않으시겠느냐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모습이나 조카 롯을 하나님께 부탁했던 그런 내용을 보면서 아브람에게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통해 재물을 얻게 하시고, 사라를 통해 이삭도 얻게 하시는 등 계속해서 아브람(아브라함)의 삶을 신실하게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창 15:5, 쉬운성경)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바라보아라. 셀 수 있으면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네 자손들도 저 별들처럼 많아지게 될 것이다.”
(창 15:6)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런즉 여호와께서는 이런 아브람의 믿음을 보시고 아브람을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하십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이 시험 안에는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향한 기대가 있었다!"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히 11:17)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시험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는데도 아들을 바칠 준비를 한 것입니다.
(히 11:18)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네게 약속한 후손은 이삭을 통해 나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 11:19)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려 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멋지게 하나님의 기대에, '죽은 사람도 살려주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꺼이 이삭을 제물로 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에 부응하듯 하나님은 그에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창 22:12) 천사가 말했습니다. “네 아들에게 손대지 마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마라. 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낌없이 바치려 하는 것을 내가 보았으니,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노라.”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에 감격하신 듯한 하나님은 이전에도 해주셨던 약속을 다시 단단히 새겨주듯이 또 다시 말씀해주시며 그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창 22:16) 천사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나에게 바치려 했으므로, 맹세코 내가 너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해 주겠노라.
(창 22:17) 내가 분명히 너에게 복을 주고 또 많은 자손을 줄 것이다. 네 자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될 것이며, 네 자손은 원수의 성들을 정복하게 될 것이다.
(창 22:18)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므로, 네 자손을 통해 땅 위의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듯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삭을 통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약속하셨으면서도 이삭을 바치라 하셨지만 그 말씀을 하실 때 얼마나 그의 믿음에 대한 기대감이 있으셨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아브라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수많은 믿음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다 이루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도 주실 것입니다. 

(요 11:40, 개역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요 11:40, 쉬운성경)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출처 https://www.biblestudytools.com



작년에도 구약통독을 완주했는데, 그때그때 주님이 감동주신 메모들을 적어만 놓고, 블로그에 입력을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마침 작년부터 이어져 오던 신약통독이 어제 끝나고, 오늘부터 창세기를 들어가게 되어, 이번에는 주님이 주신 감동과 깨달음을 블로그에 계속 정리해보려 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1~12장까지 읽었네요. 오디오파일을 틀어놓고 따라서 소리내어 읽으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만큼 통독이 가능해서 좋습니다. 



창세기 1~12장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모든 것을 이루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좋은 것들로 가득한 에덴동산에서, 유일하게 먹지 말라고 했던,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했던 선악과를 먹고나서 선과 악에 눈이 떠져서 자신이 벌거벗은 줄 그제서야 깨닫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옷을 만들어 몸을 가렸으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동물가죽 옷을 지어 그들에게 입혀주셨습니다다. 
 
(창 3:21, 아가페 쉬운성경)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악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하나님 앞에 의롭다 여겨지는 노아에게 미리 방주를 지으라 명하시고 그 방법까지도 친히 일러주시고, 때가 되매 노아와 가족들을 그 방주에 들어가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완전히 물로 씻어버리실 것이기에 종자를 남길 동물들도 암컷과 수컷의 짝을 지어 방주에 타게 하셨습니다. 

(창 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족을 이끌고 배로 들어가거라. 내가 보기에 이 세대에는 너만이 내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다.
(창 7:2) 모든 깨끗한 짐승은 암컷과 수컷 일곱 마리씩, 깨끗하지 않은 짐승은 암컷과 수컷 한 마리씩 데리고 들어가거라.
(창 7:3) 하늘의 새도 암컷과 수컷 일곱 마리씩 데리고 들어가거라. 그래서 그들의 종자를 온 땅 위에 살아 남게 하여라.
(창 7:4) 지금부터 칠 일이 지나면, 내가 땅에 비를 내리겠다.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비를 내리겠다. 그리하여 내가 만든 생물을 땅 위에서 모두 쓸어 버리겠다.”

 


 

그리고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 후에도 무지개를 두시고, 다시는 홍수로 땅의 모든 생물을 멸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노아와 노아의 자손과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하나님의 언약을 스스로 기억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또한 미리 계획하시고 예비하신대로 이루셨습니다. 


(창 9:9)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의 뒤를 이을 너희의 자손과
(창 9:10) 배에서 나와서 너희와 함께 사는 모든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 위의 모든 생물들과
(창 9:11) 너희에게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홍수로 모든 생물들을 없애 버리지 않을 것이며, 홍수로 땅을 멸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창 9:12)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사는 모든 생물과 너희 사이에 대대로 세울 언약의 표는 이러하다.
(창 9:13) 내가 구름 사이에 내 무지개를 두었으니, 그것이 나와 땅 사이의 언약의 표이다.
(창 9:14) 내가 땅에 구름을 보내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창 9:15) 나는 너희와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나의 언약을 기억할 것이다. 다시는 홍수로 땅의 모든 생물을 멸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창 9:16)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내가 그것을 보고 나 하나님과 땅 위의 모든 육체를 가진 생물들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을 기억할 것이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니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우리의 성을 세우자,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자"라고 하며 성과 탑을 짓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언어를 뒤섞으시고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게 하시고 그들을 온 땅 위에 흩어 놓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비로소 성을 쌓는 일을 그만 두었고, 그곳의 이름은 바벨이 되었습니다. 


(창 11:6)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 백성이고, 그들의 언어도 다 똑같다. 그래서 이런 일을 시작하였는데, 이 일은 그들이 하려고 하는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들은 하려고만 하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창 11:7) 그러니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뒤섞어 놓자. 그리하여 그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창 11:8)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온 땅 위에 흩어 놓으셨습니다. 그들은 성 쌓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창 11:9) 여호와께서 온 땅의 언어를 그 곳에서 뒤섞어 놓으셨으므로, 그 곳의 이름은 바벨이 되었습니다. 또한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온 땅 위에 흩어 놓으셨습니다.

 


 

창세기 11장 끝무렵에 데라와 그의 아들들 아브람, 나홀, 하란의 이야기가 나오고, 데라는 가나안 땅으로 가려다 말고 하란에 머물러 죽고,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이후에,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장차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을 이미 계획하시고 그 모든 뜻을 미리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나라와 네 친척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창 12:2) 내가 너를 큰 나라로 만들어 주고, 너에게 복을 주어, 너의 이름을 빛나게 할 것이다.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될 것이다.
(창 12:3) 너에게 복을 주는 사람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내가 저주하겠다.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의 내용은 계속 통독을 하면서 이어가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아브람일 때, 아브람을 부르셨던 그 첫 순간에! 이렇게 약속하신 바를 신실하게 이루셨음을, 이미 성경을 본 분들을 다 아실 것입니다. 

오늘의 통독을 하면서, 정말로 크게 느낀 것은 하나님은 무엇 하나 허투루 하시는 분이 아니며, "이럴 줄 몰랐네, 그러면 이렇게 하지"라고 하시는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실로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렇기에 창세기를 읽으면서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절대 그 어떤 것도 계획없이 이루시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 손에 있으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

언제나 악을 선택하는 것은 사람들이지,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악한 의도를 갖고 계획하거나 설계하시는 적이 없습니다. 
(창 6:5) 여호와께서 땅 위에 사람의 악한 행동이 크게 퍼진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이 언제나 악할 뿐이라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은 항상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하시고 예비하신다는 것을 창세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는 계획이 있고 대책이 있다는 것이 오늘따라 더욱 놀랍게 다가왔습니다. 

그 말은 곧 나의 연약함, 나의 실수, 나의 모자람을 하나님은 이미 아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중심(中心)만 확실하다면 하나님은 노아를 부르듯이, 아브람을 부르듯이 그렇게 나를 불러주실 것입니다. 

아니, 사실은 이미 부르셨습니다^^ 

(벧전 2:9, 개역개정)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어둠 가운데 죄인으로 있던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서 진리의 거룩한 빛 안에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바로 그 기쁜 소식! 우리를 위해 구원자 예수님이 오셨다는 그 복음의 소식을 전파하는 자로, 나를 택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하기에 이미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꾸 나의 연약함, 나의 부족함, 나의 실수를 토로하지 말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믿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모든 것 아시는 주님 - 어노인팅> 

모든 것 아시는 주님
내 삶에 펼쳐진 계절도
임마누엘 함께 늘 동행하시니
내 모든 순간 돌보아 주시네

모든 것 창조하신 주님
파도를 잠잠케 하신 주
실수가 없으신 신실한 하나님
내 모든 순간 풍성케 하시네

찬양해 온 우주 만물 다스리는
완전한 하나님 내 선하신 목자

찬양해 합력해 주 뜻 이루시는
위대한 하나님 사랑의 인도자 예수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의 세세한 항목들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특히 오늘 아침 묵상은 레위기 11:1~8 이었는데,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 "땅에서 사는 짐승 가운데서 너희가 먹어도 되는 것은 이러하다"라고 가르쳐주시는 내용이다. 

 

오늘 말씀에서는 "굽이 완전히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은 먹어라.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거나,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하지 못하는 짐승은 먹지 마라."(레11:3~4a)라고 하신다. 

 

우리는 보통 이런 말씀을 대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이 "왜?" 이다.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왜, 굳이 그래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 이것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인본주의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보니 내가 이해가 되어야 받아들일 수 있고, 내가 납득이 되어야 순복할 수 있다는 것...그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 아래에 왜 어떤 것은 먹고, 어떤 것은 먹지 말라 하신 것인지 가르쳐 주신다.

"너희는 이런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마라. 이런 짐승의 주검도 만지지 마라. 이런 짐승은 너희에게 부정하다."(레11:8)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이유는 "이런 짐승은 너희에게 부정하기 때문에 먹지 마라"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다시 질문한다. "왜 이런게 우리에게 부정해요? 이유가 뭐죠? 새김질하는 짐승이나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거나,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하지 못하는 짐승은 뭐가 다른데요?" 

 

결국 다시, 내가 내 마음과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말씀해주신 이유가 충분히 납득되지 않아요. 제 생각으로는 그것이 옳은건지 잘 모르겠어요. 대체 그 짐승들이 뭐가 다르다는거죠? 고기는 똑같은 짐승의 고기인데, 어떤건 부정하고, 어떤 것은 괜찮고, 왜 그래야 되는데요?"

 

이런 내 생각의 끝을 따라가보면 결국,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고, 내가 주인인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자세는 하나님이 항상 선하시고, 하나님이 언제나 옳으시며, 하나님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시고, 하나님은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그 하나님보다 내가 더 위에 있으니 '나를 이해시켜라, 나를 용납시켜라 그래야 내가 믿겠다' 라고 하는 지극히 인본적이며 지극히 교만한 발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하라, 하지마라"하는 것을 주신 것은 위의 말씀에도 나오지만 "우리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해, 우리의 성결함을 위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위대하시고 전능하시며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정하셨는데, 우리에게 "왜?"라고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정하고 부정한 것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이 있는 것이다.

나의 이해와 용납이 기준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기준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나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자.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줄 때, 어린 자녀의 정도에서는 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가 알고 있는 단어의 수와 경험의 정도가 미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이가 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녀에게 악한 것을 주는 부모가 어디에 있는가?

비록 너희가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마7:11)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하라, 하지마라'를 가르쳐 주실 때 그것이 얼마나 우리를 위한 것일까?

 

아무 죄가 없는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뼛속까지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희생제물로 보내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아멘!

 

이제 자꾸 성경 말씀 앞에서 따지지 말자.

"이건 왜요? 왜 꼭 그래야 하는데요? 다른 말씀은 모르겠는데, 난 이 말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요. 주님도 제 상황과 형편을 아시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래야 해요?" 이런 말을 하지 말자.

하나님이 그러라고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미처 다 알지 못하고 헤아릴 수 있는 깜냥이 안 되는 것일 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고, 나보다 더 사랑이 많으신 그분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자.

그리고 그 말씀을 감사함으로 겸손히 받자. 어린 아이와 같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다.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 묵상 가운데 내 안에 잘못된 자리를 발견하고 돌이킬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은 주(主)님이십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자꾸만 내가 아는 정도에서 하나님께 따지고 싶고, 내가 이해되어야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못된 자아, 옛사람의 습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고 파합니다!

주여, 내 안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멸해주시고, 하나님 앞에 부드러운 마음으로 나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님의 가르침에 기꺼이 순복할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님만이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정말로 내 안에 내가 없고, 예수님만이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영원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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