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의 세세한 항목들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특히 오늘 아침 묵상은 레위기 11:1~8 이었는데,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 "땅에서 사는 짐승 가운데서 너희가 먹어도 되는 것은 이러하다"라고 가르쳐주시는 내용이다. 

 

오늘 말씀에서는 "굽이 완전히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은 먹어라.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거나,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하지 못하는 짐승은 먹지 마라."(레11:3~4a)라고 하신다. 

 

우리는 보통 이런 말씀을 대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이 "왜?" 이다.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왜, 굳이 그래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 이것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인본주의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보니 내가 이해가 되어야 받아들일 수 있고, 내가 납득이 되어야 순복할 수 있다는 것...그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 아래에 왜 어떤 것은 먹고, 어떤 것은 먹지 말라 하신 것인지 가르쳐 주신다.

"너희는 이런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마라. 이런 짐승의 주검도 만지지 마라. 이런 짐승은 너희에게 부정하다."(레11:8)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이유는 "이런 짐승은 너희에게 부정하기 때문에 먹지 마라"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다시 질문한다. "왜 이런게 우리에게 부정해요? 이유가 뭐죠? 새김질하는 짐승이나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거나,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하지 못하는 짐승은 뭐가 다른데요?" 

 

결국 다시, 내가 내 마음과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말씀해주신 이유가 충분히 납득되지 않아요. 제 생각으로는 그것이 옳은건지 잘 모르겠어요. 대체 그 짐승들이 뭐가 다르다는거죠? 고기는 똑같은 짐승의 고기인데, 어떤건 부정하고, 어떤 것은 괜찮고, 왜 그래야 되는데요?"

 

이런 내 생각의 끝을 따라가보면 결국,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고, 내가 주인인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자세는 하나님이 항상 선하시고, 하나님이 언제나 옳으시며, 하나님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시고, 하나님은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그 하나님보다 내가 더 위에 있으니 '나를 이해시켜라, 나를 용납시켜라 그래야 내가 믿겠다' 라고 하는 지극히 인본적이며 지극히 교만한 발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하라, 하지마라"하는 것을 주신 것은 위의 말씀에도 나오지만 "우리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해, 우리의 성결함을 위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위대하시고 전능하시며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정하셨는데, 우리에게 "왜?"라고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정하고 부정한 것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이 있는 것이다.

나의 이해와 용납이 기준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기준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나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자.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줄 때, 어린 자녀의 정도에서는 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가 알고 있는 단어의 수와 경험의 정도가 미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이가 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녀에게 악한 것을 주는 부모가 어디에 있는가?

비록 너희가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마7:11)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하라, 하지마라'를 가르쳐 주실 때 그것이 얼마나 우리를 위한 것일까?

 

아무 죄가 없는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뼛속까지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희생제물로 보내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아멘!

 

이제 자꾸 성경 말씀 앞에서 따지지 말자.

"이건 왜요? 왜 꼭 그래야 하는데요? 다른 말씀은 모르겠는데, 난 이 말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요. 주님도 제 상황과 형편을 아시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래야 해요?" 이런 말을 하지 말자.

하나님이 그러라고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미처 다 알지 못하고 헤아릴 수 있는 깜냥이 안 되는 것일 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고, 나보다 더 사랑이 많으신 그분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자.

그리고 그 말씀을 감사함으로 겸손히 받자. 어린 아이와 같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다.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 묵상 가운데 내 안에 잘못된 자리를 발견하고 돌이킬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은 주(主)님이십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자꾸만 내가 아는 정도에서 하나님께 따지고 싶고, 내가 이해되어야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못된 자아, 옛사람의 습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고 파합니다!

주여, 내 안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멸해주시고, 하나님 앞에 부드러운 마음으로 나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님의 가르침에 기꺼이 순복할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님만이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정말로 내 안에 내가 없고, 예수님만이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영원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 땅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말하여라.”

그러나 모세가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파라오가 제 말을 들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저는 말이 능숙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가서 말을 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6:10~13)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모세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내가 하나님의 말씀(언약에 관하여)을 전해도 믿지 않고 듣지 않으려 하는데 하물며 파라오에게 그 말을 어찌 전하겠으며, 나는 말에도 능숙하지 못한 자인데, 어떻게 하나님은 내게 그것을 하라 하시는가? 어찌 내게 그것을 원하시는가?” 하며 하나님의 명령은 너무 어렵고 내가 할 수 있는 지경을 넘어서는 일이다, 나는 도저히 그것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생각이 그의 말 이면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이다.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내가 하는 말을 다 전하여라.” (출6:29)

 

거기까지다. 사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라 하신 것은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까지다. 그 이후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 있으신 것이다. 일을 계획하시는 여호와,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33:2)께 모든 계획과 방법이 있는 것이다.

모세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어떠한지, 하나님이 얼마나 내게 어려운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인지, 왜 내가 그것을 할 수 없는지를 항변하였으나,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갈 때 정확하게 파라오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인지,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가르쳐주신다.

 

모세가 여호와께 대답했습니다.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어찌 파라오가 제 말을 들으려 하겠습니까?” (출6:3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파라오 앞에서 마치 하나님과 같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네 형 아론은 너를 위해 대언자가 될 것이다. 네 형 아론에게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말해 주어라. 네 형 아론은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그 땅에서 내보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파라오의 고집을 그대로 두고 이집트 땅에 많은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그럼에도 파라오는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 내가 더 큰 능력으로 이집트에 무서운 벌을 내리고, 그런 다음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각 무리대로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 낼 것이다. 내가 나의 큰 능력으로 이집트에 벌을 내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 땅에서 인도해 낼 때에야 비로소 이집트 사람들은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 (출7:1~5)

 

모세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 아론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것까지였다. 그리하면, 파라오 앞에서 모세를 마치 하나님과 같게 하시는 것과 아론이 모세의 대언자가 되게 하시는 것, 파라오의 고집을 그대로 두고 이집트 땅에 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종국에는 이집트에 무서운 벌을 내리고 이스라엘을 각 무리대로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 내시며,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줄을 세상 천지 가운데 선포하실 그 일은 하나님의 몫이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을 계획하시는 여호와,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에게 부르짖어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전에 알지 못하던 놀라운 일들과 비밀들을 일러 주겠다.’ (렘33:2~3)

 

일을 계획하시고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있다. 내가 할 일은 그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내 상황과 형편과 처지와 여건이 어렵고 힘들고 안되고 못하고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는 계획이 있다. 하나님께는 뜻이 있다. 하나님은 그 계획하신 바를 충분히 이루실만한 능력이 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자꾸 나의 연약함을 바라보게 하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이유만을 나열하게 하는 자리에서 벗어나자! 주님께서 하라 하시는 것이라면 그 일을 이루실 방법이 주께 있으므로 나는 그 주님을 찾고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방법을 찾고, 사람의 지혜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엎드려 주님 앞에 구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모세에게 출애굽의 과정이 어떠할 것인지를 가르쳐주시고, 모세의 한 걸음의 순종 이후에 그 모든 역사를 친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신 것처럼 내게도 내가 알지 못했던 놀라운 일과 비밀들을 알려주시며 나의 길을 인도하시며 주님의 능하신 손으로 그 모든 일들을 이루어가실 것이다. 아멘! 아멘!


참으로 좋으신 주님, 내게는 능력이 없는데 내가 해야 할 것 같은 일들로 인해 마음의 무거운 자리가 있었는데, 주님께서 출애굽기를 보라 하시고 이렇게 주님의 가르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전능하시고 위대하시며 모든 것을 그의 뜻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내가 할 수 있다 없다, 내가 가진 것이 적다 모자라다,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하며 나를 주목하게 하는 모든 것들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덮습니다. 나의 연약함을 자꾸만 무기삼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의 모든 옳다 하는 소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파하여질지어다!

주여, 내 영이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욱 주목하게 하옵소서! 뼛속까지 죄인이며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를 바라보며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시고 온전하시며 거룩하시고 사랑 그 자체이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지금 이 곳에 두심 또한 주님의 인도하심이었고 오늘 내 삶을 주관하시는 것도 주님이시오니 나의 생각과 감정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든 자리를 성령의 불로 소멸해주시고, 이 세상 역사를 다스리시는 크신 주님의 계획 안에 내 삶이 들어가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오늘 나의 모든 언행심사가 사용되게 하시고, 주님께 먼저 부르짖으며 주님의 것으로 채우고 또 채워서 주님의 것을 흘려보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모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http://logosgarden.tistory.com


내가 파라오를 아직도 고집스럽게 놓아 두었으니,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아올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와 그의 군대를 물리칠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며, 이집트 백성은 내가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출애굽기 14:4)

내가 이집트 사람들을 고집스러운 채로 둘 것이니, 그들이 너희를 뒤쫓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전차를 모는 군인들과 전차들을 물리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내가 파라오와 그의 전차를 모는 군인들과 전차들을 물리쳐서 영광을 받게 되면, 이집트 사람들도 내가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14:17~18)

하나님은 세상 만물의 주인이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엇을 어떻게 하셔도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피조물에게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옳으시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진리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그 어떤 것도 의롭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 앞에 어떤 고난과 시련을 두시는 것은 (그 백성이 자기의 죄로 인해 그 고난과 시련을 자초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내리셨던 재앙은 이집트의 죄악으로 인해 받아 마땅한 것이었으며, 하나님이 파라오를 고집스럽게 두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이집트 사람들에게까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물리치신 큰 능력을 보고 여호와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와 여호와의 종 모세를 믿었습니다. (출애굽기 14:31)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물리치신 큰 능력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통로였던 모세를 더 믿게 되었다고 한다.

즉, 우리의 삶에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럴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좌절하지말고 유일하게 우리를 구원해주실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세상마저도 깜짝 놀랄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더욱 자라게 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개역개정)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름을 입은 사람들의 선을 위하여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8:28, 아가페 쉬운성경)

"아멘! 주님, 내게 주어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영광을 받기 원하시는지 주목하게 하옵소서! 어떤 고난과 환란 앞에서도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나아갈 때 주님께서 나의 믿음을 어떻게 자라게 하실지 그것을 더 기대하며 기도하고 주님의 역사가 내 삶 가운데 드러나게 도와주시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러나 모세가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파라오가 제 말을 들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저는 말이 능숙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가서 말을 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6:12~13)



그러나 나는 파라오의 고집을 그대로 두고 이집트 땅에 많은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그럼에도 파라오는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 내가 더 큰 능력으로 이집트에 무서운 벌을 내리고, 그런 다음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각 무리대로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 낼 것이다.

내가 나의 큰 능력으로 이집트에 벌을 내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 땅에서 인도해 낼 때에야 비로소 이집트 사람들은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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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현실과 환경을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가는 상황 가운데서도 일이 잘 풀려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하나님께 순종해서 가는데도 오히려 더 고난이 펼쳐지는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 맞다면, 그것은 우리가 미처 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말고 놀라지 말자. 하나님의 명령 앞에 내 생각으로 토달지 말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 하신 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하나님의 복안이 반드시 있으시다.

하나님은 티끌보다 작은 나보다 훨씬, 훠얼씬 더 크신 분이며, 온 세상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것을 잊지말자.

출처 http://darrowmillerandfriends.com/2017/08/14/weighty-glory-of-god/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요셉이 하는 일마다 성공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창세기 39:3)

그래서 파라오는 신하들에게 “요셉보다 이 일을 더 잘 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 사람에게는 정말로 하나님의 영이 있도다” 하고 말했습니다. (창세기 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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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이 진짜로 그 어떤 사람 안에 있고, 진짜로 그 안에서 역사하는 사람은 세상도 그것을 알아보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보아도 그것은 도무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하나님의 능력은 겉으로, 삶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4:20) 아멘! 내 삶을 통해 정말로 내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 세상도 하나님의 영광 앞에 굴복하게 하소서! 원래 주님이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내가 주님께 기꺼이, 온전히 순복함을 통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현현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Gerard Hoet: "Simeon and Levi slay the people of Shechem"


삼 일 뒤,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몸이 아플 때에 야곱의 아들 중에서 디나의 오라버니인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별안간 그 성을 공격해서 그 성 안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창세기 34:25)


그러자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괴로움을 안겨 주었다. 이제는 이 땅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이 나를 미워할 것이다. 우리는 수가 적다. 만약 그들이 힘을 합해 우리를 공격하면, 나와 우리 집안은 멸망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 형제들이 말했습니다. “우리 누이가 창녀 취급을 받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습니까?" (창세기 34:30~31)


야곱이 자기 가족과 자기와 함께 사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 우상들을 다 버려라. 너희 스스로 깨끗하게 하고 옷을 바꾸어 입어라.

여기를 떠나 벧엘로 가자. 그 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을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는 내가 괴로움을 당할 때에 나를 도와 주셨으며,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와 함께 계셨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가지고 있던 이방 우상들을 다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귀에 걸고 있던 귀걸이도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성에서 가까운 큰 나무 아래에 파묻었습니다. (창세기 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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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려운 일이 있고 세상 속에서 근심할 일들이 있으나, 그때 혼자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예배하면 하나님은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허탄한 것들을 기꺼이 버리게 하시고 다시 깨끗하게 해주신다.

"주님, 내게 닥친 어려움이 있을 때, 영의 눈을 들어 그것을 바라보고 더욱 나를 정결케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훈련의 기회로 삼게 해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선(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신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 앞서갈 때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있고,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치름이 있다.


"주여, 내가 주님보다 먼저 앞서가지 말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가게 하소서. 내 옳은 소견으로 앞서 감으로써 분열과 분리와 용서치 못함과 대립이라는 죄의 열매를 맺는 어리석음이 없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MMem 0433: Memorize key verses of Philippians


빌립보서 3장을 묵상하며...

사도 바울에게는 율법을 지키는 열심이 있었고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바울은 '모세의 율법은 내 인생의 안내자 역할을 하여, 나는 율법을 가장 엄격히 지키는 바리새인이 되었다'(빌3:5)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 때는 이 모든 것이 내게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 모든 것이 아무 쓸모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이러한 각성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하였고 누구라도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게 된다(요일2:15~16)고 하였던 그 말씀이 무엇인지 주님을 알아가면서 더욱 깨닫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사도 바울 못지않게 내가 속한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그런 열정도 있었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는게 뭔지 조금 알게 되었을 무렵에 일했던 B사에서, 하나님은 내 안에 있는 '육신의 정욕'을 보게 하셨다.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아이디어들이 많았고 이렇게 하면 돈을 벌겠다 싶은 일도 많았다. 내 마음은 어느새 돈을 벌어, 세상을 누리는데 달려갔고 주일성수까지 포기하며 회사일에 매달렸다. 그리고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주님은 내 안의 육신의 정욕을 깨뜨리셨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E사에 들어갔다. 그곳은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누구나 흠모할만한 직장이었고 하는 일 또한 세상에서 알아줄만한 일이었다. 그곳에서 주님은 내 안에 '안목의 정욕'을 보게 하셨다.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소위 '있어 보이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 전문가라는 미명 아래 세상을 우습게 보며, 나의 지식과 경험이 잘난줄 알고 어찌하든 그런 지식과 경험을 채우는데 나의 열정을 다했다. 그러나 그 즈음의 특별새벽기도 기간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으로 인해,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지점과 내가 달려가고 있는 지점이 너무나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주님은 세상에서 우러러보이고 싶은 내 욕심을 깨뜨려주셨다.

그리고나서 돈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요, 이제는 정말 나라는 존재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욕심이 아닌 정말 선한 무언가를 찾고 싶어서 비영리단체 G에 들어갔다. 세상의 욕심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 알았고, 그곳에서 내가 뭔가 해볼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서 처절하게 깨달은 것은, 사람이 사람을 결코 구원할 수 없다는 것, 사람의 노력으로 이 세상을 좋게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될 수 있는 '인본주의'인지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아닌, 내가 보기에 이래야 한다는 '자기 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시기를 통해 하나님은, 내 안에 이 땅에서 선하다 하는 일로 높아지려는 '이생의 자랑'이 산산히 부서지게 하셨다.

그리고나서 하나님께 구했었다. 정말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얻은 답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바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말이다.

지금 나는 하나님이 사명을 주신 사역자이자 하나님의 기업을 운영하는 대리자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영혼은 기쁘다. 세상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예비하신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평안함이 있다. 여전히 또다른 형태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싸우고 있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분별하게 해주시는 성령과 진리가 내 안에 있기에 두려울 것이 없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내가 가치있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진리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내가 옳은 줄 알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의 삶의 목표와 방향은 정해졌고 진리는 날마다 나를 자유케한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말하였던 이것이 나의 고백이며, 이 믿음에서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구한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능력을 체험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고, 그분과 같이 죽는 것입니다. 그분을 따를 수만 있다면, 나도 마지막 날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빌3:10~11).

내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이미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으며,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빌3:12).

나는 과거의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해 힘껏 달립니다(빌3:13). 나는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 상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려고 그리스도를 통해 친히 내리신 것입니다(빌3:14).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결국 멸망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배가 원하는대로(육체의 욕망) 살아가며, 수치스러운 일을 하고서도 도리어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세상 일에만 관심을 둡니다(빌3:19).

그러나 나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다시 오시는 날을 나는 기다립니다(빌3:20)."

아멘!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 홀로 영광받으시옵소서!

사진출처:갓피플닷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슬픔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고린도후서7:10)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기에(히4:12)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앞에서 우리 육체는 찔러 쪼개어지는 아픔을 겪을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진리의 말씀이 나의 육체를 파하는 것이며,

그 때 내 영혼에는 진리로 인한 자유함을 얻게 되는 '돌파(breakthrough)'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진리가 내 안에 들어와서

내 영혼의 모난 부분을 빚어가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슬픔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나를 회개케하여,

진정한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결코! 후회할 것이 없다.

 

내게 진리의 권면을 한 누군가에 대한 트집을 잡을 것도,

내 스스로가 어떤 면에서 억울하다고 주장할 것도,

주님은 왜 나를 이렇게까지 대하셔야 하냐고 원망할 것도 없이,

 

그것은 나로 하여금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슬픔, 즉 육체의 소욕을 채우지 못함으로 인해

나 자신을 연민하거나 내 처지를 비관하거나

나에 대해 자책하거나 혹은 상대방을 탓하거나

이러한 것들, 내 육체를 위로하고자 하는 슬픔은

결국에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롬6:23)인데,

내 영혼이 주님 앞에서

진리로 회개하여 돌이켜지고, 합당하게 빚어지기를 원하기보다

내 육체의 만족을 채우려는 것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결국 '진리'보다 '나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것이다.

진리로 육체의 돌파를 이루지 못하고,

여전히 죄의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된다면

종국에는 그리스도의 공의로운 심판대 앞에서

'죽음'에 이르는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한다.

 

진리의 말씀이 나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드러내게 하셔서,

내 안에 있는 죄의 추함과 더러움이

거룩하신 주님 앞에서 몸서리쳐지게 싫어질지라도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내가 버려야 할 것(육체의 소욕=죄)과

내가 붙들어야 할 것(진리)을 깨닫게 하고

진정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본문] 에스겔 27:26-36 / 아가페의 쉬운큐티 “두로의 멸망에 대한 주변 나라들의 탄식”

 

[여는 이야기] 두로는 자신의 부를 의지하며 해상 무역을 위해 국가의 모든 힘을 집중시켰으나, 하나님은 두로를 심판하여 갑작스럽게 망하게 하실 것이다. 이에 두로와 무역하던 나라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일 것이다. 또한 두로의 멸망을 조롱하며 기뻐할 것이다. (쉬운큐티)

 

26 너의 노를 젓는 사람들이 너를 깊은 바다로 데리고 나가지만 동풍이 불어와 바다 한가운데서 너를 산산조각낼 것이다.
27 너의 재산과 물품들과 상품들, 네 뱃사람들과 사공들, 그리고 배 일꾼들, 네 상인들과 너의 모든 군인들, 그리고 배에 탄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이 바다 한가운데에 빠지게 될 것이다. 네 배가 좌초하는 날에 그렇게 될 것이다.
28 네 뱃사람들이 울부짖을 때, 해변가의 사람들이 무서워 떨 것이다.
29 노를 젓는 모든 사람들이 배를 버리고 선원들과 모든 뱃사람들이 바닷가에 서서,
30 목소리를 높여 너를 향해 크게 울부짖을 것이다. 그들은 티끌을 자기 머리 위에 뿌리며 재 속에서 뒹굴 것이다.
31 너로 인하여 그들은 머리를 밀며 베옷을 입을 것이다. 고통 속에서 크나큰 소리로 슬피 울 것이다.
32 그들이 너를 향해 통곡하며, 너를 위해 애도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누가 두로처럼 침묵한 적이 있고 바다에 둘러싸인 적이 있었는가?
33 네 상품들이 바다로 팔려 나갔을 때, 너는 많은 나라들을 만족시켰다. 너의 커다란 재물과 너의 물품들로 너는 땅의 왕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34 그런데 이제 너는 바다에 빠져 산산조각났고, 깊은 바다에 잠기니, 너의 물품들과 너의 모든 동행자들이 너와 함께 깊은 바다에 빠졌다.
35 바닷가에 사는 모든 자들이 너를 보고 크게 놀라고 그들의 왕들도 몸서리를 치며, 그 얼굴이 두려움으로 일그러졌다.
36 모든 나라의 상인들이 너를 비웃으니, 너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이제 끝장나 버렸다.’”

(쉬운성경, 에스겔 27:26-36)

 

[묵상과 적용]


1. 재산이 아무리 많더라도 사람의 생명이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26-27절)

 

두로는 해상 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했던 나라였기 때문에 그들의 주요 활동지는 바다였다. 26절의 '너의 노를 젓는 사람들'은 두로의 국가로서의 향방을 좌지우지하던 사람들로서, 그들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많은 부를 얻을 것을 기대함으로 깊은 바다로 나아가지만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어느 날, 동풍이 불어와 그들이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바다 한가운데서 산산조각이 나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될 것을 예언하신다.

 

27절의 너의 재산과 물품들과 상품들, 네 뱃사람들과 사공들 그리고 배 일꾼들, 네 상인들과 너의 모든 군인들, 그리고 배에 탄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곧 두로가 의지했던 모든 것들이다. 두로는 언제나 해상 무역으로 많은 부를 가지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드나들며, 경제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멸망’이라는 것은 참으로 먼 얘기와 같았을 것이다. 두로는 매우 많은 것을 소유하였지만 두로가 믿었던 바다 한가운데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소유는 결코 그를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좌초되듯 두로라는 국가가 무너질 때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도 함께 바다에 빠져버리게 되어, 두로가 의지했던 그 모든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한 국가가 소유했던 모든 것들도, 나라를 폐하시고 세우시는 하나님의 손 앞에서는 결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두로, 즉 고대국가 ‘페니키아’로 알려진 그 나라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경제적, 문화적인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자랑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멸망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너무나 부강했던 두로였기 때문에 두로의 멸망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였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 망할 것 같지 않던 국가도 이처럼 스러져 멸망할 수 있다면 일개 개인의 삶은 어떠할 것인가.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로 말씀해주신 것처럼, 사람이 아무리 여러 해 동안 쓰기에 넉넉한 많은 재산을 쌓아두고 편히 쉬고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기겠노라(눅12:19) 계획한다고 할지라도 당장 오늘 밤 주님이 그 영혼을 가져가신다면 그가 준비한 것을 누가 가져가겠는가?(눅12:20)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것(눅12:21)이야말로 정말 어리석은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온갖 욕심을 경계하고 주의해야 한다. 재산이 아무리 많더라도 사람의 생명이 거기에 달려 있지 않으니(눅12:5), 두로의 멸망을 보면서 내 마음에도 이 땅의 것을 욕심냈던 것이 있다면 다시금 그 마음을 추스려야겠다.

 


2. 왕과 높은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며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 (28-32절)

 

갑작스럽게 두로에 멸망의 날이 닥쳤을 때, 두로라는 배를 이끌던 뱃사람들, 즉 두로의 지도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르짖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두로의 멸망을 보고 해변가의 사람들 역시 무서워 떨게 될 것이다. 노를 젓는 모든 사람들이 배를 버리듯, 두로의 지도자들이 망해가는 두로를 버리고 떠나게 될 것이고, 두로의 백성들은 바닷가에 서서 목소리를 높여 나라의 멸망을 애통해 할 것이다.

 

그들은 당시 사람들이 큰 슬픔을 표현했던 방법처럼 머리를 밀며 베옷을 입을 것이고, 나라의 멸망을 경험하는 고통 속에서 크나큰 소리로 슬피 울게 될 것이다. 두로 백성들은 망해가는 나라를 향해 통곡하며 두로를 위한 애도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슬퍼하며 부르짖어도 두로는 다시 회복되지 못하고 계속 침묵하며 멸망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두로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이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망하고 나의 삶의 터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참으로 말 할 수 없이 당황스럽고 힘겨운 상황일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은 그가 속한 국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치를 받았던 시절에, 나라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어느 누구 할 것이 없이 대한민국에 속한 사람이라면, 본인이 속한 국가인 대한민국이 일제의 지배를 받는 중에는 자신도 그 지배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아무리 한 개인이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이 여긴다 하더라도 그가 속한 국가의 지배 체계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속한 나라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유지될 수 있기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 왕과 높은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며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딤전2:2).

 

우리나라가 지금은 평안해 보이더라도 우리와 대치상태에 있는 북한이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나라의 국민은 어느 누구라도 그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국가와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하시고, 대한민국에 살게 하신 이상, 나는 이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 손에 붙들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만 하는 것이다. 두로의 백성들이 국가의 멸망 앞에서 애통해하고 부르짖어도 이미 하나님께 멸망의 심판을 받은 다음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아직 평안한 중에 있을 때 더욱 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겠다.

 


3. 하늘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에 마음을 두지 마라. (33-36절)

 

33절 말씀처럼 두로의 상품들이 바다로 팔려 나가며 여러 나라에 공급되었을 때, 두로는 많은 나라들을 만족시켰다. 두로의 커다란 재물과 물품들은 땅의 왕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결국 두로의 부강함은 이 땅의 것들을 만족시킬 뿐이었던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는, 썩어지고야 말 이 땅의 것들을 만족시키는데 두로의 모든 힘과 능력이 쓰였던 것이다.

 

두로가 아무리 자기가 가진 소유물들로 주변 국가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그 날에는 두로의 도움을 받았던 주변 국가들의 힘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로의 물품들이 바다에 빠질 때, 즉 그들의 소유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빌로니아에 의해 깨어지고 부수어질 때, 그와 함께 했던 동행자들 즉 두로의 부강함을 통해 함께 유익을 얻었던 자들도 함께 피해를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5절은 바닷가에 사는 모든 자들, 즉 두로로 인해 부유함을 함께 누렸던 주변 국가들이 두로의 멸망을 보고 함께 놀라게 되고, 그 주변 국가의 왕들도 부강하던 두로가 어떻게 이렇게 하루 아침에 망할 수 있게 되는지 몸서리를 치며 그 얼굴이 두려움으로 일그러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두로가 자신의 부유함을 자랑하며 주변 국가들에게 물건을 공급하고 그들에게 만족을 주었건만, 두로가 멸망하는 그 때에는 모든 나라의 상인들이 결국에는 두로를 비웃게 된다는 것(36절)이다. 두로가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좋은 물품의 공급처이자 재물의 통로로 위세 등등하게 지내왔지만 하나님께서 두로를 멸망시킬 때에는 그들이 과거에 자랑했던 모든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으니 두로는 참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고, 이 땅에 존재했던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두로와 주변 국가의 관계를 보면, 사람이 아무리 주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잘 맺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자기의 의롭다 여겨지는 행위로 만족함을 누렸다고 하더라도, 정작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그 어떠한 인간관계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로는 주변 국가들에게는 모든 필요의 공급처였으며 두로가 있었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이 그 부요함을 함께 누렸었다. 그러나 심판의 날에는 그 주변 국가들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고, 도리어 그들은 두로의 멸망을 비웃기까지 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두로가 결국 자기를 높여주고, 자기에게 유익을 줄 것 같은 주변 국가들, 즉 땅의 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왔던 것을 보면서, 지금 나의 삶은 무엇을 만족시키며 누구를 만족시키는 것인가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하늘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함이 마땅하다(골3:1). 그 곳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 오직 하늘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에 마음을 두지 않아야 하는데, 잠시 잠깐 한눈을 팔면 어느새 하늘의 것보다 땅의 것이 내 마음을 산란하게 함을 느낀다.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주님’이라고 찬양하고 고백하는 것처럼 그대로 살기를 바란다. 어느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함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 위함도 아닌, 내 영혼의 생명이 오직 주님께 있으니 나의 삶은 주님을 위한 삶, 그리고 주님으로 인해 살아가는 삶이어야 마땅한 것이다. 나의 삶이 이 땅에서의 관계를 만족시키고, 또한 이 땅의 것으로 내 스스로도 만족하는 삶이 아닌, 오직 주님을 만족시키고 주님으로 인해 부요한 삶이기를, 그것이 정말로 내 심령에 새겨지고 내 뼛속에 새겨지기를 주님께 간구한다.

 


[오늘의 기도]

자신의 부요함을 믿고 자만했던 두로의 멸망을 보면서, 내 심령 깊은 곳에서도 나의 어떠함을 믿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참으로 내 눈에 보이는 이 땅의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썩어질 것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새기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영의 눈을 활짝 열어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존귀함을 더욱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의 것에 마음을 줄 가치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보화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결코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받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땅의 것을 만족시키고 이 땅의 것으로 만족했던 두로의 멸망을 교훈삼아 날마다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리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모든 중심이 주님을 향하도록 날마다 저를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의로운 길로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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