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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어야 하는가, 먹지 말아야 하는가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다. 

사람의 생각에 따라, 성경말씀을 내 주장의 근거로 삼거나 타인을 비방하는 이유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나의 주장이나 타인을 비방하는 근거가 되면 안되고, 그 말씀 자체가 나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고 순종해야한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영적인 삶을 갉아먹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힘쓰십시오. (아가페 쉬운성경)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들어, 술 취하지 말라 했으니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면 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은 술 취할 때, 그것이 우리의 영적인 삶을 갉아먹을 것이라고 했다. 단지 먹어도 된다, 안된다를 논하기 이전에 주님이 술 취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새기는 것이 중요하겠다. 

술은 육신의 정욕의 대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적인 삶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정말 내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과 술에 취하는 것은 절대 동시에 이루어질 수가 없다. 

 

술을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대표적으로 인용하는 말씀이 다음 말씀이다. 

잠언 31:4~7 (아가페 쉬운성경) 
4 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왕에게 합당하지 않다. 독주를 탐하는 것은 통치자에게 합당하지 않다.
5 술을 마시고 법을 망각하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다룰까 두렵다.
6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나 주고, 포도주는 근심하는 자나 마시게 하여라.
7 그것으로 잠시나마 그들의 고통을 잊게 하여라.

6절 말씀을 들어, '성경에서도 근심하는 자에게는 포도주를 주라고 했다, 그러니 내가 근심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술을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내가 필요하다고 한 구절을 떼서 내 말의 근거로 삼으면 안된다. 앞뒤 맥락을 잘 읽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저 말씀의 맥락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왕에게 합당하지 않고, 독주를 탐하는 것은 통치자에게 합당하지 않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술을 마시게 되면 법을 망각하게 되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나 주고, 즉! 어차피 죽을 사람이나 독주를 마시게 내버려두고, 포도주는 근심하는 자나 마시게 하라 즉! 근심 때문에 헤메는 사람이나 (어쩔 수 없이) 포도주 먹는 것을 내버려두라, 그러면 죽게 된 자의 극심한 고통이나 근심하는 자의 고통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씀이 절대 독주나 포도주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걸 보면 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다. 사람으로 하여금 '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내 스스로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게 만드는 것이 술이다. 그런 술에게 나를 맡기고 싶은가? 이 또한 내 스스로 판단해야 할 문제다. 

 

그렇다면 술은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스스로 제어하면서 먹어도 된다?

다음 말씀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잠언 23:29~35 (아가페 쉬운성경) 
29 재앙이 누구에게 있는가? 슬픔이 누구에게 있는가? 분쟁이 누구에게 있는가? 불평이 누구에게 있는가? 누가 불필요한 상처와 충혈된 눈을 가지고 있는가? 
30 술독에 빠진 자에게 있고, 독한 술을 들이키는 자에게 있다. 
31 술잔에 따라진 포도주가 붉고, 번쩍이며, 목으로 술술 넘어가도 너는 거들떠 보지 마라. 
32 마침내 그것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다. 
33 너의 눈은 이상한 것들을 보고, 입은 허튼 소리를 지껄이게 될 것이다. 
34 너는 망망대해 가운데서, 돛대 꼭대기에 누워 잠자는 자 같을 것이다. 
35 “아무리 때려 봐라. 하나도 아프지 않다. 아무리 때려 봐라. 아무 느낌도 없다. 술이 언제 깰 것인가? 깨면 또 마셔야지!”라고 말할 것이다.

술을 쉽게 보면 안된다. 술은 내가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술은 뱀 같이 물고, 독사같이 쏠 것이라고 한다. 술을 마시게 되면 이상한 것들이 보이고 입은 허튼 소리를 지껄이게 된다. 술 먹은 다음에 나오는 반응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니! 망망대해 가운데서, 돛대 꼭대기에 누워 잠자는 자처럼 멍하게 되고, 맞아도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감각이 둔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한다는 소리가 '술이 깨면 또 마셔야지'라고 한다고....

자기 스스로 술을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으나 결국에는 술에게 삼켜져서 술이 나를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술은 절대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술은 뱀같고 독사같다는 말을 잘 기억해야겠다. 술은 쉽고 봐서는 안되는, 무서운 대상이다.

 

술을 치료 목적으로 먹어도 된다고 하는 말이 있다. 

디모데전서 5:23 
디모데여,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도 약간 마시도록 하십시오. 포도주는 소화 기능을 도와 주어 지금처럼 자주 아프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가페 쉬운성경)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개역한글)

실제로 바울은, 위장병이 있어서 소화가 잘 안 되었던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했던 바가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디모데가 평소에 포도주를 마시는 습관이 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만 마시고 포도주는 마시지 않던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약간' 마셔보라고 한 것은 포도주가 소화 기능을 도와주어서 위장병으로 자주 아프던 것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포도주는 육신의 정욕을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치료목적의 약으로서 먹는 것이다. 

고대 희랍의 의학 관련 문헌에 의하면, 위장 장애에 쓰이는 포도주는 취하게 만들지 않는 종류의 포도주였습니다. 아테네우스는 “위장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물과 혼합하거나 데운 약한 포도주, 특히 포도를 으깨기 전에 나오는 쥬스를 먹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약한 포도주는 머리에 전혀 통증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출처: 다국어성경 Holybible http://www.holybible.or.kr/B_GAE/cgi/365bibleftxt.php?VR=GAE&FN=102005)


이것을 볼 때, 디모데가 마셨던 포도주는 취하는 정도의 술이 아니라, 치료목적으로 물과 혼합하거나 데운 약한 포도주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치료 목적의, 예외적인 상황이므로 이 구절을 들어서 술을 마시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가 지킬 수 없을 만큼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다 세상을 이길 힘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 이길 수 있는 승리는 우리의 믿음에 있습니다. (요한일서 5:3~4, 아가페 쉬운성경)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5:3~4, 개역개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단지 사랑한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기 위해 주신 생명의 명령을 지키는 것으로 내 사랑을 증거해야 하겠다. 

 


사사기 3장 (아가페 쉬운성경)

1 여호와께서는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시험하려고 그 나라들을 남겨두셨습니다.

2 여호와께서 그 나라들을 그 땅에 남겨 두신 단 한 가지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전쟁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치기를 원하셨습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을 시험하기 위해 그 땅에 남겨진 백성들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의 조상에게 내린 명령에 순종하는지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레위기의 율법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의 악함이 얼마나 심할지를 미리 아시고, '이것은 하지말라, 이것은 하라' 하는 것을 참으로 세세하게도 명시해주신다. 언뜻 보면 거의 비슷해보이고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 같은 율법도, 사실은 대상과 상황에 따라 세세하게 쪼개어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알려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도 사람이 그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없을 것을 아셨다. 그래서 대속죄일을 두기도 하셨고, 죄를 씻는 예식을 다양하게도 마련해두셨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

그렇듯이 율법을 보면 볼수록 사람의 죄를 깨닫게 된다. 그것을 이미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의로운 요구들을 모두 이루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성령으로 아예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면서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심판에 대해서 가르쳐주시니 이것이 얼마나 다행이며 큰 은혜인지! 보혜사가 오시면, 그분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이 잘못 생각한 것들을 책망하실 것이다. 그분은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은 것이 바로 죄라는 것을 말해 주실 것이며, 내가 아버지께로 감으로써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라는 것을 알려 주실 것이다. 이 세상 통치자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 심판에 관하여 그분이 책망하실 내용이다.” (요16:8~11, 아가페 쉬운성경)

율법이 아무리 세세하다 할지라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사람은 생각하는 모든 것이 악해서 악한 것에 관한 한은 참으로 창의적으로 죄를 짓기에 빠르다. 여호와께서 땅 위에 사람의 악한 행동이 크게 퍼진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이 언제나 악할 뿐이라는 것도 아셨습니다. (창6:5, 아가페 쉬운성경) 그 어느 것보다도 비뚤어진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은 심히 악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속을 알 수 없다. (렘17:9, 아가페 쉬운성경)

그러므로 율법으로 사람의 죄악을 다 제어할 수 없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아예 독생자 예수님의 피로 단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멸해주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죄에 대해 가르쳐주시고 의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니 그 보혜사 성령님을 의지하여 항상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의인지 가르침을 받아서 내 언행심사의 선택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라 하시는 율법과 규례와 각종 성물을 만드는 방법들을 보면 정말로 기가 막히게 세세하고 상세하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하라 하실까...너무 어려운 걸 요구하시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까지 완벽할 수 없는걸요? 라는 말이 나오곤 했는데....

이번 통독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은 천국에 대한 모형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으로서는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완벽한 모양과 형상으로 있는 것들(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망라하여)을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구현하시려니...그것이 하나님께는 오히려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기준은 정말로 완벽 그 자체, 온전 그 자체이실텐데, 아직 이 세상에 있는 우리들과 함께, 우리들을 데리고, 그 완벽함, 그 온전함을 이루시려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정도로 전해주신 것이 오히려 감사한? 일이랄까?!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 다만 감사한 것은 이제 성령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것들을 다 이룰 수 있게 해주셨다. 율법이 죄의 본성 때문에 연약하여 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죄를 없애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심으로써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 속에 거하고 있는 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죄의 본성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성령에 따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로운 요구들이 완벽히 이루어졌습니다. (롬8:3~4)

그러니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어렵다고 토달지말고 성령님을 더욱 찾고 구하며 성령의 새 법을 따라 행하기에 힘써야겠다!

출애굽기에서 명시된 율법과 규례를 보면 매우 상세하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만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상세한 설명을 해주시고, 모세는 그것을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정말로 정교하고 세밀하시다. 사실 인체만 보더라도 수천 수만 가지의 조직이 정교하게 창조되었고 세밀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을 볼 때 하나님의 위대하고 놀라우심을 보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은 정교하고 세밀하신데 우리는 하나님께 묻고 나아갈 때 얼마나 상세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귀 기울였는지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하다. 그저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yes or no, do or don't, go or stop 이것 뿐이었으니...이것이 사실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주님께 내용과 과정 또한 묻고 듣고 나아가야 함을 배우게 하시니 감사하다.

세상의 모든 시간과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이집트의 파라오를 고집스럽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과 같이, 세상의 권세 가진 자가 그것이 마치 자기의 권세인양 하지만 사실은 그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있는 것이다.

파라오의 마음을 고집스럽게 하셔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 삶에 허락하신 고난이 있을 때 그 고난을 준 대상 자체를 미워하거나 대적할 것이 아니라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기억함으로 하나님께서 이 일(고난)을 통해 내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시는가?  내가 이것을 통해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통과해야 하는가?에 더욱 주목해야 하겠다.

출처 https://familyradio316.com/god-is-sovereign/

 

야곱이 자신의 꾀로 자기 뜻을 이루려 했으나 결국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야곱이 파라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삼십 년이 되었습니다. 제 조상들보다는 짧게 살았지만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 (창47:9)

요셉은 자기가 뜻하지 않은 고난 속으로 들어갔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매 형통한 삶이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39: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39:23)

결국 이 땅에서 높아지고 낮아지고 잘되고 못되고는 큰 의미가 없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대로 순종하여 형통한 삶을 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둘로 나뉠 뿐이다.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쓰고 애쓰고 노력한다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바꾸지는 못한다.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주요 세상을 다스리시는 절대자이시므로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한다해서 하나님의 역사에 큰 일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이시고 사람은 그저 피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마땅히 할 일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을 감사하며,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매일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면 된다. 나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여 매일 자족하는 삶을 사는 것 그거면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자기 일에 만족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일은 다시 없다. 내가 보니, 이것 역시 하나님의 손이 정하신 대로다. (전2:24)

하나님을 위한다면서, 내심 나의 야망을 숨긴 채로 크고 높고 위대한 일을 꿈꿀 필요가 없다. 세상은 그것이 마치 하나님을 위한 일인양 말하고 '너 자신을 개발해라, 너의 잠재력을 키워라, 더 큰 꿈을 꾸라'고 강조하지만 이러한 세상의 말과 하나님의 나라는 참으로 다르다.

하나님은 결국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따라 이 세상을 다스려 오셨고, 지금도 그렇게 다스리고 계시고, 앞으로도 그렇게 다스리실 것이다. 사람이 할 바는 그런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하나님 스스로가 우리에게 드러내 주실 때(계시해주실 때) 하나님 아는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다. 

 

 

출처 https://christiannet.co.za/home/2018/11/20/knowing-gods-will-is-that-really-enough/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기 마련이다.

그 안에서 인간의 역할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이 차이 밖에 없다.

사람이 무엇을 더하거나 빼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거나 어그러지거나 할 것이 없다.

하나님의 뜻은 그 절대적이고 전능하신 계획을 따라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즉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정하신 뜻대로 이루어진다. 내가 하나님 뜻 안에 있으면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을 것이요 내가 그 뜻 밖에 있으면 심판의 불에 살라질 존재 밖에 안되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촛대를 옮기신다 하셨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5)

그러므로 내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안에 있어서 그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될 것인지, 하나님 밖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살다가 죽어 내 삶의 행실의 결과로 심판받을지 그것의 선택은 내게 달려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공의로우시고 하나님은 철저하게 옳으시다. 하나님은 철저히 선하시며 하나님은 철저한 절대 주권자이시다. 그 하나님 안에서 살아갈 것인지 하나님 밖에서 살아갈 것인지 그 선택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정말 살 길은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 뿐이니... 죽을 길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철저히 언약의 관계다. 

그 언약 안에 있으면 -> 즉, 그 약속을 믿고 따르면 축복, 그러나 그 언약 밖으로 나가면 -> 즉, 그 약속을 따르지 않고 자기 옳은 소견으로 살면 저주.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언약의 관계다. 예수의 보혈 안에 살때, 즉,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순종하여 살 때 사람은 복을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시스템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밖으로 나갔는데도 복이 있다? 그 복은 참된 복이 아닌 것이다. 사실, 그저 세상에서 높아지고 세상에서 부요한 것은 사단이 주는 것이다.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귀가 말했습니다. “내가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소. 이것은 모두 내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소. 내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 될 것이오.” (누가복음 4:5~7)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영원한 생명이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필요한 것을 누리게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은 하늘의 복이다. 이 땅에 누리는 것은 덤의 행복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원하여,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기를 바라신다. 그것이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신 내용인 것 같다. 

 


출애굽기를 보면 성막과 성막에 필요한 성물들을 만드는 과정이 나온다. 거기에서 가장 자주,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나오는 말이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했습니다."

"모세는 모든 일을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모든 일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했습니다."

 

 

명령하신 대로 한다?
이 말을 들을 때 왠지 모를 거부감과 답답함이 밀려오지는 않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한다는 것에 대해 마치 자유가 없는 것처럼, 무언가에 속박되어 답답한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그 명령을 내리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잘 몰라서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다. 전제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이 지극히 선하시고 모든 것을 나의 구원을 위해 이루신다는 전제를 확실히 알고 믿을 때, 그런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것만큼 안전하고 분명하고 좋고 자유한 것이 없다.

믿을만한 리더를 따를 때 아랫사람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나이먹고 세상을 살아갈수록 더 느끼는 것은 선택과 결정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리더로서 무언가를 정하는 것에 따르는 책임이 얼마나 커지는 것인지 하는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한치 앞도 모르는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고, 내 머리카락조차 단 한 올이라도 내 스스로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는, 실은 무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따르는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나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만큼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나의 하나님은, 내 것이면서도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내 머리카락 수까지도 헤아리고 아시는 분이시다.

전지(全知)-모든 것을 아시고, 전능(能)-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신 것이다.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고 모든 시간과 공간의 주관자가 되시며 세상의 시작과 끝을 계획하신, 바로 그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이 내리시는 명령은 내가 지금 당장 이해하기 어렵거나, 미처 그 큰 계획을 다 알 수 없거나, 지금 내가 따라가기가 어려워요 하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항상 옳고 선하다 하는 것을 먼저 믿고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성막과 성물을 만들 방법을 다 알려주신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성경의 말씀이다.

말씀은 멀리 있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모세는 율법으로 얻게 되는 의에 관하여 “율법을 행하는 사람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얻은 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마음속으로 ‘누가 하늘에 올라간단 말인가?’라고 말하지 마라.” 이 말은 그리스도를 땅으로 모셔 내려오겠다는 뜻입니다.

“또는 ‘누가 땅 아래로 내려간단 말인가?’라고 말하지 마라.” 이 말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로부터 모셔 올리겠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말씀이 네게 가까이 있으니,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여러분의 입으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고, 또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믿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로마서 10:5~9)


이 말씀은 신명기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호와께 복종하시오. 이 ‘율법의 책’에 적혀 있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시오. 여러분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시오.”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주는 이 명령은 여러분에게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고, 너무 멀리 있는 것도 아니오.

이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저 명령을 받아 올 수 있을까? 그래야 우리가 듣고 지킬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할 수 없소.

또 바다 저편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가 바다 저편으로 가서 저 명령을 받아 올 수 있을까? 그래야 우리가 듣고 지킬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할 수도 없소.

그렇소. 그 말씀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소. 그것은 여러분의 입과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소. 그러므로 그 말씀을 잘 지키시오. (신명기 30:10~14)


하나님의 명령은 멀리 있지 않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어렵지고 않다. 성경을 펼치면 다 나와있다. 나는 그저 그 말씀을 읽고 그 명령에 순종하면 된다.

나의 선한 목자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아시며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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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선하신 주님의 말씀은 오늘도 내 마음을 정리해주시고 나의 눈을 밝혀 주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멀리 있지 않고 이 성경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지켜 행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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