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느날 갑자기 아브람을 선택하시고 그를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왜 아브람을 선택하신 것인지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그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를 향해 복을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창 12:1)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나라와 네 친척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창 12:2) 내가 너를 큰 나라로 만들어 주고, 너에게 복을 주어, 너의 이름을 빛나게 할 것이다.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될 것이다.
(창 12:3) 너에게 복을 주는 사람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내가 저주하겠다.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12장과 13장에는 아브람이 가는 곳곳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예배의 제단을 쌓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창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다.” 아브람은 그 곳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 12:8) 그리고 나서 아브람은 세겜에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갔습니다. 아브람은 그 곳에 장막을 세웠습니다. 서쪽은 벧엘이었고, 동쪽은 아이였습니다. 아브람은 그 곳에서도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창 13:4) 그 곳은 아브람이 전에 제단을 쌓았던 곳이었습니다. 아브람은 거기에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창 13:18) 그리하여 아브람은 자기 장막을 옮겼습니다. 아브람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큰 나무들 가까이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그 곳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 신앙에서 '기복신앙'이라는 것을 배격할 때가 많다. 하나님께 사람이 이 땅에서 잘 되게 해달라고 빌면 안된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소위 기복신앙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와 Give and Take의 거래를 하는 듯한, 그래서 자꾸 사람 편에서 '하나님이 저한테 이거 해주시면 저도 이거 할께요'라는 식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기복'의 행위를 하기 전에도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방적인 복을 선포하셨기에 우리는 복을 구할 필요가 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사실은 누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에서 더욱 깨닫게 되는 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아브람을 선택하시고,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복을 선포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어떤 점을 보시고 그를 고르셨는지는 하나님만 아시겠으나 분명한 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의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창 12:4)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란을 떠났습니다. 롯도 아브람과 함께 떠났습니다. 그 때에 아브람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고 하신 그 말씀에 순종하여 하란을 떠났다.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갈 것에 기꺼이 순종하여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었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는 가는 곳곳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제단을 쌓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람(후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부러워할 때가 많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복은 모든 인류에게 주신 복의 선포와도 같다. 그것은 이미 선포되었으나, 순종하는 자에게서만 성취가 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에서 깨닫게 된다. 

 

아직 아브람이 뭘 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향한 복을 선포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창조한 인간을 향한 사랑이란 참으로 절대적이며, 일방적이고, 또한 확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약성경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온다. 

 

(요일 4:19, 쉬운성경)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롬 5:8, 쉬운성경)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롬 11:29, 개역개정)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Give and Take의 거래 관계란 존재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일방적으로, 절대적으로 사랑하셨고, 그냥 지명하여 부르신 것이다. 누구든, 그 부르심에 해당되는 것이다. 다만 그 부르심에 응하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말이다.

 

아브람을 불러 복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절절한 일방적인 사랑도 없다 싶다. 그런데 아브람이 그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란을 떠났고, 이후에 하나님께 예배의 제단을 쌓은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앞서 선포하신 복을 아브람에게 정말로 줄 만하다, 아브람이 정말로 그 복을 받을 만하다고 여기시며, 당신의 선택에 대해 기쁜 마음이 들지 않으셨을까^^

 

아, 오늘의 묵상에서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내가 사람의 언어로 다 표현할 길이 없어서 아쉬울 뿐이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정말 엄청나다. 우리가 할 것은 그렇게 먼저! 내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함으로 화답하며, 나 또한 사랑의 고백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그 뿐인 것이다. 다른 어떤 것을 구하고, 문제해결을 위해서의 목적이 아닌 그저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해주시고 먼저 불러주셨기 때문에! 그 이유 하나만으로 하나님은 나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인 것이다. 

 


 

절대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복을 보면서 이미 그 복이 내게도 선포되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할 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나고 하나님께 예배의 제단을 쌓았듯이 그렇게 나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고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다른 어떤 이유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신 그 사랑 자체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마땅한 것인데, 자꾸만 이 땅에서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주님께 가지고 가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마치 내가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는 사람인양 생각했던 나의 무지함을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해야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께서 창조하신 나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심으로 이미 태초부터 온 세상을 창조하고 그것을 누리라고 하셨던 분입니다. 이미 나를 향한 하나님의 복은 온 세상 가운데 충만하게 선포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미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랑과 복이 가득함에도 늘 나의 문제를 앞세우며 그것이 당장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과 복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힘들어하고 우울해하고 괴로워했던 것을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시고 이미 온 땅 가운데 충만히 선포된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 순종과 충성으로 나아가는 제가 되게 하옵소서! 참으로 좋으시고 사랑 그 자체이시며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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