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독의 본문인 창세기 25~27장을 읽었을 때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창 25:21) 이삭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아내를 위해 여호와께 기도드리니, 여호와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어 주셨으므로, 리브가가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 25:22) 그런데 리브가의 뱃속에 있는 아기들이 서로 다투었습니다. 리브가는 “어찌하여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생각하며 여호와께 나아가 여쭈었습니다.
(창 25:23) 여호와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나라가 네 몸 안에 있다. 두 백성이 네 몸에서 나누어질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리브가가 임신을 했을 때부터 이미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뱃속에 있는 아이에 관한 뜻을 정하신 바가 있었다. 

 

이게 예정론의 문제로 가면,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정해두셨는데, 사람의 의지가 무슨 소용이며 복음을 전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 예정해두셨으니까!) 라는 요상한 문제로 풀어질 수 있어서 다소 조심스러우나 그냥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를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신앙생활을 해온 약 25여년의 시간 동안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수십차례 성경을 읽으면서 내가 깨닫게 된 아주 소중한 진리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신다'는 것이다. 바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절대주권을 가진 분이시며 전지전능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뜻과도 같다. 그래서 역사는 History = His(God's) Story이기도 한 것이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세말까지 모든 것을 정해두셨고 그것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결코 숨기지 않고 성경에 모두 기록해두셨다. 그 성경을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절대 열리지 않고 풀리지 않고 이상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 의지하여 구약과 신약을 통전적으로 바라보고 성령님께 깨달음을 구하면 세상의 모든 역사는 진실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철저히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만한 자들에게는 찾을 수 있도록 다 기록해두셨고 가르쳐주신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하나님은 이미 리브가의 뱃속에 있는 두 아이를 향하신 뜻을 정해두셨다. 왜 그래야 하나?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당신의 마음대로 하실 권한이 있으시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인본주의적인 교육을 오래 받게 되면 여기에서부터 반발심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해두셨고 그것에 따라서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마치 자신의 자유가 억압되는 것 같고 나의 의지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그 계획대로 이루신다는 것에서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은 지극히 선하시며,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신 분이라는 것이다. 이 대전제가 없이는, 사람이 지금까지 배운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성경이 결코 열리지 않는다. 사람의 눈에 고통이고, 고난이고,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대체적으로 사람 자신의 죄 때문인 경우가 많으나 어쨌든 그것을 허락하신 것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안다면 사람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해,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역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도 조금이나마 더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뱃속에 있던 두 아이, 에서와 야곱에 관한 뜻을 가지고 있으셨다. 이것은 로마서 말씀에도 설명이 되어있다. 

 

(롬 9:10) 그뿐만이 아닙니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에게서 아이를 임신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롬 9:11)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그들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시는 목적을 굳게 세우기 위해,
(롬 9:12) 리브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불러 주시는 분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롬 9:13) 이것은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라고 기록된 대로입니다.
(롬 9:14)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공정하지 못하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롬 9: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자 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롬 9:16) 그러므로 모든 것이 사람의 요구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멘! 사람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시는 목적을 굳게 세우기 위해 에서와 야곱을 향해 다른 뜻을 가지고 계셨다. 

 

(롬 9:17)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파라오에게 “내가 너를 왕으로 세운 것은 너를 통해 내 능력을 나타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두루 전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롬 9:1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또 어떤 사람은 완고하게도 만드십니다.
(롬 9:19) 그러면 여러분 중에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했다고 우리를 책망하시는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롬 9:20) 그러나 사람이 무엇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말대꾸한단 말입니까? 토기그릇이 자기를 만든 사람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롬 9:21) 토기그릇을 만드는 사람이 똑같은 진흙으로 귀하게 사용할 그릇과 천하게 사용할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단 말입니까?
(롬 9:22) 하나님께서 진노를 나타내시고 그분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알리시기를 원하셨으면서도 멸망받기로 되어 있는 진노의 그릇들을 인내로써 참아 주셨다면 어쩌겠습니까?
(롬 9:23) 또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 영광에 들어가도록 미리 준비하신 자비의 그릇들에게 그분의 풍성한 영광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면 어쩌겠습니까?


결국 지극히 선하시고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따라 토기장이가 필요에 따라 그릇을 만들듯이 그렇게 사람을 창조하실 권한이 있다. 다만 사람의 인생의 관점에서는 내가 어떤 그릇인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다 알 수가 없기에 성경의 말씀을 읽고 깨달은 바대로 순종의 그릇이 되는 자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도 순종의 그릇으로 (아마) 예정되어 있는 것을 이 땅에서 증명할 수 있을 것이요, 반대로 성경이 주어져 있음에도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로마서 1장 말씀처럼 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두셨음에도 스스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은 그 자체로(그 선택 자체가) 어찌보면 결국에는 구원받지 못할 자였다는 것을 스스로가 증명하는 셈이 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 역시 오늘날 우리는 후대에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런 뜻을 가지고 계셨구나를 알 수 있는 것이지 그들의 삶의 순간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 내내 나오지만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뜻을 감추시고 알려주지 않으려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합한 자들, 의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시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말씀해주셨었다.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오늘 본문에 리브가에게도 하나님은 다 말씀해주셨다. (오늘날은 구약과 신약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 말씀해주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하지 않고 늘 자기 옳은 소견대로,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인양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일뿐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다 말씀해주셨다. 

 

만약 리브가가 하나님께 그 말씀을 듣고 나서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하나님께서 두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묻고 구했다면 결과는 동일했었을지라도 과정은 좀 다르지 않았을까? 에서와 야곱 역시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주신 말씀을 사람의 관점에서 '이게 무슨 차별이냐?'라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람의 뜻보다 높은 곳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여쭤보고 하나하나 순종하면서 나아갔다면 에서도, 야곱도 인생을 그렇게 고달프게 살 필요가 없지는 않았을까?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리브가의 잘못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적용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에서의 잘못은 맏아들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창25:34), 야곱의 잘못은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꾀와 속임수로 일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랬기 때문에 리브가는 하루 아침에 두 아들을 원수지간으로 만들고, 자신이 죽기까지 야곱을 다시 보지 못했으며(스스로 그 저주를 받겠노라 하였음 - 창27:13), 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야곱을 미워하는 증오심 속에 괴로운 삶을 살았고, 야곱은 에서보다 더한 외삼촌 라반을 만나 엄청난 연단의 시간을 거치고 에서를 두려워 하는 마음 속에서 항상 살아야만 했다. 물론 이삭도 눈이 어두워지고 사리분별이 흐려지면서 에서와 야곱을 분간하지 못한 실수 가운데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선포하고 에서에게는 줄 복이 없게 만든 아버지가 되었으나 그 실수 또한 크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 허락된 것이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의 최종적인 뜻은 있으시겠으나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택과 순종의 자리를 허용하시는 부분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까지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 인해 얼마나 인생이 꼬일 수 있는지(하나님의 역사는 그 뜻대로 흘러가지만) 여실하게 보여주시며 후대에게 교훈을 삼으라고 하시는 것 같다. 반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를 통로삼아 당신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도 한다. 

 

오늘날 참으로 세상이 혼란스럽고 더욱 악으로 치닫는 것 같아 마음을 어려울 때가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사건과 사고 앞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왜 이런 것을 내버려두시느냐 라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세가 가까워질수록 더더더 악이 관영해질 것이라고 하셨으며 이 세상은 결국 멸망으로 갈 것이라고 이미 성경에 기록하시고 다 알려주셨다.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 있지 않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을 이미 예비해두셨고 이 땅은 그 악이 가득해질 때 결국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이미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해 알려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심판받게 될 이 땅의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하늘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골 3: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십시오. 그 곳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골 3:2) 하늘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골 3:3) 옛 사람은 죽었으며,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골 3:4) 여러분 모두는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광 가운데 그분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골 3:5)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죄악된 것은 다 버리십시오. 성적인 죄, 악한 행동, 나쁜 생각, 지나친 욕심 등은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입니다.
(골 3:6)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에게 화를 내실 것입니다.
(골 3:7) 여러분이 예전에는 이런 일들을 했을지 모릅니다.
(골 3:8) 그러나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이런 것들을 몰아 내려고 힘쓰십시오. 분한 생각, 화를 내는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 선하지 못한 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골 3:9)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과거의 잘못된 삶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골 3:10) 여러분의 삶 속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새 생활 가운데 더욱더 새로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그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점점 더 자라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뜻은 이미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보고 안다고 하면서도 정말로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일하시는 방식을 믿지 않고 나의 옳은 소견 가운데 죄로 나아갔던 것을 용서해주시옵소서!

 

이미 나의 삶은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나의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나는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러하기에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뜻과 계획을 따라 순종의 그릇으로, 의의 도구로 살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삶에 대해 내 생각을 따라 짐지고 있었던 것을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시고 다시 하나님께서 세상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자리에 기꺼이 쓰임받는 자가 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히 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히 12: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 12:16) 성적인 죄를 범하지 말며, 에서처럼 하나님을 생각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하십시오. 에서는 맏아들로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었지만, 한 그릇의 먹을 것을 위하여 맏아들의 특권을 팔고 말았습니다.
(히 12:17) 여러분도 알다시피 에서는 그후에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 울면서 부탁했지만 거절당했으며,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아멘! 내 안에 자꾸만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곧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장자의 명분을 파는 죄악이 있음을 고백하며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시고 다시 회개할 기회를 얻을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정신차리게 하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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