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독은 창세기 22~24장이었는데 성령님께서 각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일"에 대해 주목해서 보게 하셨다. '여호와 이레'의 말씀으로 너무나 유명한 본문이라 내 생각이 마구 마구 솟아올랐다.

그렇지,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단한 믿음을 가졌지

자기 자식까지 제물로 바치다니 정말 엄청난 순종이야

역시 믿음의 아버지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야,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할 수 있어야지

이런 믿음을 드려야 하나님께 복을 받는데, 아 나는 뭐지?

이렇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아가려는 순간!

아차! 묵상은 이렇게 하는게 아니지, 내 생각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성경을 풀어달라고 구해야 하는거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성령님이 멈추게 해주셨다, 감사합니다!) 

다시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잠잠히 구했다. 

 

그랬더니 나의 온갖 잡생각이 사라지고, 갑자기 나의 시선이 아브라함의 마음과 행동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아브라함 한 사람을 주목하는 것 같은 하나님의 시선! 그 마음이 나에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 22:1) 이 일들이 있은 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아브라함이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창세기 22장의 시작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다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다. 그냥, 아무 이유없이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맞닥뜨릴 때, "하나님, 나한테 왜! 이러세요?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거 보시니 퍽이나 좋으십니까?"라고 하늘에다 삿대질을 하는 듯한 마음을 품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은 절대 아무런 이유없이 사람의 인생에 무엇인가를 허락하시는 분이 아니다. 설혹 그것이 시작부터 나의 죄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와중에도 하나님을 찾고 구할 기회를 주시고, 그 영혼이 고난 중에 하나님을 붙든다면 그의 인생이 새로 태어나게 도와주시는 좋으신 분이다. 

 

그러므로 이 장면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고자 그를 부르신 것 자체가 아무 뜻 없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조물주가 장난치듯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새겨진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라고 부르시자 아브라함은 즉각적으로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하나님의 시선에서 볼 때, 온 땅을 두루 감찰하다가 자신을 향하여 귀기울이고 있는 영혼을 부를 때 그가 즉각 답을 한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얼마나 기쁠까? 그(아브라함)가 나(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마음이 열려있고, 또한 들을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 하나님으로서는 내가 창조한 피조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실 것 같다.(이건 이후에 아브라함의 태도를 볼 때에도 계속 연결되는 마음이다.)

 

(창 22:2)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네 아들을 잡아, 태워 드리는 제물인 번제물로 바쳐라.”
(창 22: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태워 드리는 제사인 번제에 쓸 장작을 준비한 다음에 이삭과 두 종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곳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실로 엄청난 말씀을 하셨다. 그가 100세에 얻은 귀하디 귀한 아들이자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성취될 통로인 그 아들을 태워 드리는 제물로 바치라니!!! 그런데  3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 준비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것을 이룰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으로 번제에 쓸 장작을 준비하고 번제물이 될 아들 이삭과 두 종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곳으로 갔다.

 

엄청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아브라함은 흔하디 흔한 사람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삭을 바치라니요? 이삭이 어떤 아들인지 하나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그럴리가 없어요,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많은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고 이미 약속하셨는데요? 제가 잘못 들은거겠지요

말도 안됩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어떻게 죽입니까? 하나님, 그렇게 잔인한 분이셨나요?

등등등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법한 소리를, 아브라함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곳으로 갔다. 이럴까? 저럴까? 설마 그럴까? 사람의 생각으로 왔다 갔다 분분하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도 않고 즉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행하는 아브라함을 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래, 그래! 잘 한다! 바로 그거다!
이제 앞으로는 쭉 내가 말한대로만 해라. 그 길로 너는 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여정을 통과해내기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시지 않았을까? 

 

(창 22:4) 삼 일째 되는 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멀리에 그 곳이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한 모리아 땅으로 가기까지는 무려 3일이나 걸렸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즉각 길을 떠났지만 그곳에 당도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길을 떠날 수는 있다. 하지만 정말로 가야할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고 상처받고 괴로워하며 도중에서 포기하는가? 그러나 오늘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 과정 중에 어떤 일이 있다 할지라도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새기게 된다. 왜냐하면 그 곳에 도착해서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는 과정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과정이 결론은 아닌 것이다. 결론은 거기까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것이다. (최종적인 우리의 목표가 본향인 천국인 것처럼!!!)

 

3일이나 걸린다 하더라도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아브라함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길을 떠난 아브라함이었기에, 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이루고자 하는 열심으로 그 목적지에 반드시 도착할 수 있도록,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지 않으셨을까?

 

내 아들아, 내 딸아, 잘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다.
이제 다 와간다, 조금만 더 힘을 내어라.
이 길의 끝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다.
어서 오너라 나의 자녀들아.

 

이렇게 외치며 우리를 안아주시려고 두 팔 벌려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

 

(창 22:5) 아브라함이 자기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나귀와 함께 이 곳에 머물러 있어라. 내 아들과 나는 저쪽으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겠다.”
(창 22:6) 아브라함은 태워 드리는 제사인 번제에 쓸 장작을 자기 아들에게 지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챙긴 후, 아들과 함께 걸어갔습니다.
(창 22:7) 이삭이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했습니다. “불과 장작은 있는데, 번제로 바칠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이삭이 물었습니다.
(창 22:8) “얘야, 하나님께서 번제로 바칠 양을 준비하실 것이다.” 아브라함이 대답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아들은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성경을 보면 이 장면이 가장 마음 아프고 힘든 장면일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설교들이 이 당시의 아브라함의 심정을 상상해서 '매우 인간적인 고뇌'가 마치 아브라함에게 있었을 것 같이 묘사한다. 그러나 이 장면 어디에도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여 가는 이 길에서 고통스러워 하거나 괴로워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이삭을 안쓰럽게 여기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성경에는 전혀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이삭에게 지게 했고, 자신은 불과 칼을 챙긴 후에 부지런히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삭이 보기에 불과 장작은 있는데 번제로 바칠 양이 보이지 않아 천진난만하게  그 양은 어디 있냐고 물었을 때, 참으로 지혜롭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가리운 채 "하나님께서 번제로 바칠 양을 준비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계속 묵묵히 아들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갔다. 

 

이것에 대해 당시 아브라함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히브리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히 11:17)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시험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는데도 아들을 바칠 준비를 한 것입니다.
(히 11:18)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네게 약속한 후손은 이삭을 통해 나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 11:19)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려 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곧이 곧대로 들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 하셨으나 거기에서 그 어떤 타협도 하지 않고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하고자 불과 칼을 챙겨서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다. 그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에게 약속한 후손이 이삭을 통해 나올 것'이라고 하셨는데도 이삭을 죽이라 하시는 것은 "아! 하나님께서는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는 분이구나!"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진실로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그 당시에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에 대해 들어본 적도, 그가 실제로 본 적도 없었음에도 하나님께서 능히 그렇게 하실 분이라는 것을 믿고,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고자 데리고 갔을 때, 그의 믿음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래! 네가 나를 알아주는구나!
네가 나의 선한 뜻을 아는구나.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어 내가 몹시 기쁘다.
나의 능력을 알아주니 내가 너의 믿음대로 다 보여주고 싶구나!
 

 

하나님의 진심을 알아주고,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알아주고, 하나님이 사랑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아드린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은 매우 기쁘시지 않을까? 

 

(창 22:9) 그들은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곳에 이르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벌여 놓은 다음, 자기 아들 이삭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창 22:10) 그리고 나서 칼을 들어 자기 아들을 죽이려 했습니다.
(창 22:11)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러자 아브라함이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창 22:12) 천사가 말했습니다. “네 아들에게 손대지 마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마라. 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낌없이 바치려 하는 것을 내가 보았으니,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노라.”
(창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나무에 뿔이 걸려 있는 숫양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양을 잡아다가 자기 아들 대신에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창 22:14) 이 일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 곳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 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드디어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곳에 당도했다. 그는 그 곳에서도 지체하지 않고 그 곳에 온 목적을 이루고자 했다. 기껏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목적지까지 다 와서 자신의 의를 드러낸다거나 다른 엉뚱한데로 새지 않고 그는 원래 그 목적지까지 온 이유를 확실하게 하며 아들 이삭을 죽이려 했다. 

 

그랬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그를 불러 아들에게 손대지 말라고,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고, 그를 말렸다. 그러면서 "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낌없이 바치려 하는 것을 내가 보았으니,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라고 그의 믿음을 인정해주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았을 때 나무에 뿔이 걸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숫양 한 마리를 보았고, 그는 비로소 '이 숫양을 이미 하나님께서 준비해두셨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그 숫양을 잡아다가 자기 아들 이삭 대신에 번제물로 드렸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이레 =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창 22:15) 여호와의 천사가 두 번째로 하늘에서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창 22:16) 천사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나에게 바치려 했으므로, 맹세코 내가 너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해 주겠노라.
(창 22:17) 내가 분명히 너에게 복을 주고 또 많은 자손을 줄 것이다. 네 자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될 것이며, 네 자손은 원수의 성들을 정복하게 될 것이다.
(창 22:18)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므로, 네 자손을 통해 땅 위의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천사는 두 번째로 하늘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아브라함이 정말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바치려 했기에, 아브라함을 향해 하나님께서 주셨던 약속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새겨주셨다. 아브라함의 순종에 대해 하나님 편에서 이미 하셨던 약속에 대한 보증에 보증을 거쳐 주신 셈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진정으로 성취된다는 것을 보증해주시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여기서 깨닫게 된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의 여정을 통해 아들 이삭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순종을 드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진실로 체험했다. 즉, 내가 죽음으로써 살아계신 하나님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만난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성취하실 분이라는 것을 더욱 믿을 수 있었으리라! 아직 그의 눈 앞에는 당도하지 않은 후손대의 일이지만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죽이려 했을 때 숫양을 준비해두신 것처럼 앞으로의 일 또한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인도하시며 반드시 성취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아브라함 안에 더욱 확고해졌을 것 같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그가 계시다는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더욱 굳건해진 아브라함을 바라보시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그래, 자랑스럽다 나의 아들아! 내가 이 상을 주기 위해 너를 이 곳으로 불렀노라. 
네가 순종하여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면 못 받았을 이 상이,
이제 진실로 가야 할 자리를 찾아갔으니 내가 참으로 기쁘다. 
온 땅을 두루 살피며 나를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너를,
내가 창조한 것이 진실로 기쁘다. 
내가 마련한 모든 것을 받아 누리도록 하여라.
너의 누림이 곧 나의 기쁨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여정을 거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시험을 멋지게 통과해냈을 때 하나님은, 자기가 한 것보다 자녀가 한 것을 더욱 기뻐하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기뻐하지 않으셨을까?

 

(마 25:31) “인자가 모든 천사들과 함께 영광 가운데 다시 와서,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마 25:32) 그 때에 세상 모든 나라가 그 앞에 모일 것이며,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인자가 사람들을 나눌 것이다.
(마 25:33) 인자는 자신의 오른쪽에는 양을, 왼쪽에는 염소를 둘 것이다.
(마 25:34) 그 때 왕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로부터 복을 받은 너희들이여, 와서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준비하신 나라를 물려받아라.
(마 25:35) 내가 배가 고플 때, 너희는 내게 먹을 것을 주었다. 내가 목마를 때, 너희는 마실 것을 주었다. 내가 나그네로 있을 때, 너희는 나를 초대해 주었다.
(마 25:36) 내가 헐벗었을 때, 너희는 내게 옷을 입혀 주었다. 내가 아플 때, 너희는 나를 돌보아 주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너희는 나를 찾아 주었다.’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의 순종을 통해, 우리에게 복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우리가 당신께서 주실만한 복을 받을만한 깨끗한 그릇이 되어주기를, 그래서 마음껏 붓고 붓고 또 부어주기를 원하시는 그런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도둑은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왔다.”(요10:10)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목적은 당신의 피조물인 사람이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고,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나라를 물려받기를 원하시는, 정말로 좋고도 선하신 것이다. 

 


 

(약 1:12) 시험을 받은 후, 더 강건해졌다면 복 있는 자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증명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멘아멘! 하나님께서 인생 가운데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은 나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임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에서 나의 믿음을 증명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나에게 상을 주시려고 모든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신 것이니 지금 내게 닥친 고난과 시련을 바라보지 않고 그 너머에서 상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을 찾는 이에게 상을 주시는 좋으신 분임을 알고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시게 하는 복된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좋으신 분임을, 선하신 분임을 알고 믿는다 하면서도 순간 순간 인생에 닥친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 흔들리고 요동했던 모든 불신앙의 순간들을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시고, 다시금 주님께서 나에게 순종하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그것을 진실로 순종하는 행함으로 나아갈 때 상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게 하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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