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정독 본문이 이제 요한복음으로 넘어갔다. 요한복음 1~3장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님께서는 내 눈이 세례 요한에게 머물게 하셨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게 한 사람이었다. 

 

(요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요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 1:7) 요한은 그 빛에 대해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믿음을 얻도록 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요 1:8) 요한 자신은 그 빛이 아니었으나, 사람들에게 그 빛에 대하여 증언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철저히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요, 빛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명을 가진 자였다. 그는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물로 회개의 세례를 주었는데, 매우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자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이 제사장과 레위인 몇 사람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게 하였다(요1:19)

 

(요 1:23) 요한은 그 사람들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했습니다. “나는 광야에서 ‘주님을 위하여 길을 곧게 만들어라’ 하고 외치는 사람의 소리입니다.”

 

오늘 성경을 읽으며 이 말씀에 얼마나 마음이 울컥하던지...세례 요한은 진정 '나라는 존재' 자체가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길을 곧게 만들어라' 하고 외치는 사람의 소리라고 자신을 정의하였다. '나'는 없고 주님을 위해 외치는 사람의 '소리'로만 존재할 수 있다니...정말 엄청난 수준이다. 나는 아직도 매순간 내가 하고 싶고, 하기 싫고, 나는 이게 좋고 저건 싫고, 여전히 '나'라는 존재 때문에 씨름하는 경우가 많은데ㅜㅜ 세례 요한은 진실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실 길을 예비하라고 먼저 보내신 사람의 수준에 합당한 인물이었다. 

 

세례 요한이 물로 회개의 세례를 주는 것을 보며, 그의 자격에 대해 의문을 가진 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면 왜 사람들에게 세례를 줍니까?"라고 따졌지만 요한은 당당했다. 

(요 1:26)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줍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서 계십니다.
(요 1:27) 그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격을 따져 묻는 자리에서조차 내 자격은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증명하려 들지 않고,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예수님께 돌린다.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계시는데, 그분은 내 뒤에 오시기는 하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아! 이 말씀도 정말 울컥한다. 세례 요한은 정말로 '나'라는 존재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를 사람들에게 소개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직 그가 오시지 않아서 지금은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으나 실제로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겸손이 아니라 그가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는 왕의 왕이요, 주의 주이신 분이시기에 그는 감히 그분과 비교조차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진실로 낮은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요한은 자기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보십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라고 선포하며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이 아래와 같다. 

(요 1:33) 나 역시 그분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분이 ‘너는 그 어떤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와 그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바로 그분인 줄 알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34) 나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보았고,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세례 요한도 누가 그리스도인지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례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 어떤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와 그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바로 그분인 줄 알아라" 라고 하셨기에, 그 말씀을 듣고 기억하여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임을 알았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던 것이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가 나온다. 거기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다. 

(요 3:12) 내가 너희에게 이 세상의 일들에 대해 말했는데도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데, 내가 너희에게 하늘의 일들을 말한다면, 너희가 어떻게 믿겠느냐?

 

예수님이 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이심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실 때, 예수님께서 세상의 일들을 가지고 증명하셨어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수준에서는 깨닫지도 못할 하늘의 일들을 말한다면 어떻게 믿겠느냐고 말씀하시는 이 부분에서, 세례 요한은 바로 이 '하늘의 일들'을 듣고 믿고 기다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요 3:31) “위로부터 오신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 분이다. 땅으로부터 온 사람은 땅에 속하여, 땅의 일을 말한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오신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 분이다.

위로부터 오신 분, 곧 예수님은 모든 것 위에 계신 분이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신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으로서, 태초에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은 만유를 창조하시고 만유를 다스리시는 분이시기에 모든 것 위에 계시면서 하늘의 일을 말씀하시는데, 그에 반해 땅으로부터 온 사람은 땅에 속하여 땅의 일을 말하는 수준에 있기 때문에 '하늘의 일들을 말해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요 3:27)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아멘아멘! 땅에 속한 사람의 수준에서는 하늘의 일을 말해도 믿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기에 하늘의 일을 알려주시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태에서부터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로 선택받아 이 땅에 보내진 것이었으며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오신 후부터는 자신이 쇠하여 지는 것에 대해 조금도 요동하는 마음없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요 3:28) 너희들은, 내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분보다 앞서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을 들은 증인들이다.
(요 3:29) 신부의 주인은 신랑이다. 신랑을 기다리며, 그가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신랑의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듣고 대단히 기뻐한다. 나의 기쁨도 이와 똑같은 것이다. 나의 기쁨이 이제 이루어졌다.
(요 3:30) 그분은 점점 더 위대해질 것이고, 나는 점점 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세례 요한은 물로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다가 그가 오시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를 소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이 오셨고, 세례 요한은 눈 앞에서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빛이신 예수님에 대해 말씀 그대로를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음을 얻도록 하는 일에 쓰임받았다. 세례 요한은, 참으로 나는 없고 예수만이 사는, 주의 종의 참된 모습을 보여준다. 성령님은 오늘 내게, 이 모습이야말로 내가 회복해야 하고 또한 지향해야 하는 주의 종의 모습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시는 듯하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오늘의 말씀 안에서도 레마의 말씀으로 나의 심령을 두드리시고 정신차리게 해주시는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 빛이 아니었으나 사람들에게 그 빛에 대하여 증언하기 위해 왔으며 저 또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거듭난 인생으로서 그 빛을 만났으니 오직 그 빛을 증언하는 일에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야 함에도 자꾸만 내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죄된 육성이 깨어지고 그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세례 요한은 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땅을 사는 동안 철저히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모습을 볼 때 아직도 많이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자리가 있습니다. 주여,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시고, 제 안에 이런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가치관이 말씀으로, 기도로 파쇄되게 하옵소서! 주의 종으로서 더욱 거룩히 구별된 자가 되도록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주만 따르게 하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성경정독의 본문 창세기 48~50장에서 드디어 하나님의 역사 중에 하나의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다. 창세기를 묵상하는 내내 '말씀하신즉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가 어떤 것인지를 보게 되었다.

특히 오늘 본문 중에 성령님께서 내게 레마의 말씀으로 주셨던 것은 아버지 야곱이 임종 전에 요셉과 두 손자를 불러 축복해준 것과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요셉에게 주었던 축복에 대한 부분이었다.





[창48:3-6, 쉬운성경]
3 야곱이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 루스에서 나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서 나에게 복을 주셨다.
4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고 많은 백성의 아버지로 삼아 주겠다.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영원히 주겠다.'
5 네 두 아들은 내가 오기 전에 이 곳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부터 그 애들은 내 아들이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르우벤이나 시므온과 마찬가지로 내 아들이 될 것이다.
6 너에게 다른 자녀가 생긴다면 그 애들은 네 자식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애들도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마찬가지로 땅을 받게 될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 루스(벧엘이 된 곳)에서  자기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을 다시 한번 요셉에게 전한다. 임종 전에 자녀에게 하는 유언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게 마련일 것인데, 이 자리에서 야곱은 자신을 만나주신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그만큼 야곱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셨고,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이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복을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야곱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본인의 노력으로 일군 어떤 것을 전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전한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부럽고 또한 소망되는 일인가? 나 또한 죽기 전에 내가 이룬 것을 자랑하듯 말하는게 아니라 내 삶에 주신 하나님의 복을 선포하고 전하는 자가 되고 싶다!


[창48:21-22, 쉬운성경]
21 그리고 나서 야곱이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죽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계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네 조상의 땅으로 다시 데리고 가실 것이다.
22 너에게는 네 형제들보다 더 많은 땅을 주겠다. 내가 칼과 활로 아모리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세겜 땅을 너에게 주겠다."


그리고 야곱은 요셉에게 '자신은 죽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를 조상의 땅으로 다시 데리고 가실 것'이라고 이야기해준다. 왜냐하면 그것은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들었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야곱은 요셉에게 다른 형제들보다 더 많은 땅을 주겠노라 약속한다.

그리고 야곱은 12명의 아들들에게 각각 그들이 살아온 세월 가운데 아버지의 눈에 보였던 것들을 이야기하며 축복과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 중에서도 요셉은 가장 길고 풍성한 축복을 받았다.

[창49:22-26, 쉬운성경]
22 "요셉은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와 같고, 샘물 가에서 자라는 풍성한 포도덩굴과 같다. 요셉은 담 위에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와 같다.
23 사람들이 그를 화살로 맹렬히 공격하고, 무섭게 활을 쏘아댄다.
24 그러나 요셉의 활이 더 잘 맞고, 요셉의 팔이 더 힘세다. 요셉의 힘은 야곱의 전능하신 하나님에게서 오고, 그의 능력은 이스라엘의 바위이신 목자에게서 온다.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너를 도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에게 복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비로 너에게 복을 주시고, 땅의 샘물로 너에게 복을 주신다. 네 아내들이 많은 아이들을 낳게 하심으로 너에게 복을 주시고, 네 짐승들이 많은 새끼들을 낳게 하심으로 너에게 복을 주신다.
26 네 아버지의 받은 복은 영원한 산들의 복보다 크고, 변치 않는 언덕들의 복보다 크다. 이 복이 요셉의 머리 위에 내리기를. 자기 형제들과 헤어졌던 자의 이마에 내리기를."


요셉이 아버지의 유언에서 이렇게 큰 축복을 받은 것을 보니, 그가 일찍이 아버지 곁을 떠나 이방 땅에서 겪었던 수많은 고난과 연단의 시간이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하나님은 야곱의 유언을 통해 요셉을 '자기 형제들과 헤어졌던 자'라고 칭하셨다. 하나님은 요셉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쓰임 받으며 이집트에서 했던 수고를 다 기억하시고 갚아주신 것이다. 이 장면을 묵상할 때 신약성경의 말씀이 떠올랐다.

[막10:29-30, 쉬운성경]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나와 복음을 위해 자기 집과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식, 또는 밭을 버린 사람은
30 이 세상에서 핍박과 함께 집, 형제, 자매, 어머니, 자녀 그리고 밭을 백 배로 받을 것이다. 그리고 오는 세대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눅18:29-30, 쉬운성경]
2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사람은
30 이 세상에서 여러 배로 받을 것이요. 또한 오는 세상에서 영생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은 진실로 이 땅에서 행한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알고 계신다. 야곱이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위해 이 세상에서는 고난 받았으나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며 다른 형제들보다 더 많은 땅을 약속 받았듯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자기 집과 형제, 자매, 부모, 자녀 등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버릴 수 없다(차선으로 둘 수 없다)하는 것들을 버렸을 때,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비록 핍박이 따를 수는 있으나 밭을 백 배로 받을 것이요, 오는 세대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해주신 것이다.


[전12:14, 쉬운성경] 하나님은 선악간의 모든 행위와 남몰래 한 모든 일을 심판하실 것이다.

[계21:3-4, 쉬운성경]
3 보좌로부터 큰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서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도, 슬픔도, 울음도, 아픔도 없으며, 모든 옛것들이 다 사라질 것이다."


요셉이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낱낱이 기억하시고, 그에게 이 땅에서도 형통한 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서 얻을 복도 풍성하게 주셨다.

우리의 삶 또한 지금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으로, 순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비록 이 땅에서는 고난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다 알고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며 반드시 갚아주시는 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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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좋고도 위대하신 하나님! 말씀하신즉 이루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계시해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이 세상에서의 삶은 잠깐이고, 하나님 나라는 영원함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영원한 것을 위해 오늘 진리를 따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심는 것에 게으르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나의 마음의 중심과 모든 행위를 알고 계시며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주실 상벌의 심판이 있음을 기억할 때 매 순간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을 더욱 의식하여 죄를 멀리하고 진리만을 좇아가게 하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다시오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정독일지의 본문은 창세기 45~47장이었다. 창세기 45장에서 드디어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장면이 나온다. 

(창 45:3) 요셉이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신가요?” 그러나 형들은 너무나 놀랐기 때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창 45:4) 요셉이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리 가까이 오세요.” 그러자 형들이 요셉에게 가까이 갔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러분의 동생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에 노예로 팔았던 바로 그 요셉이란 말이에요.

 

형들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힘들고 높은 자리에 있었던 이집트의 총리이신 분이 갑자기 "내가 여러분의 동생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에 노예로 팔았던, 바로 그 요셉이란 말이에요."라고 했을 때 형들이 정말 얼마나 놀랐을까? 시기와 질투에 눈먼 나머지, 얄미운 동생을 이집트에 노예로 팔고 나서, 이집트에 먹을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 난처한 상황에 빠졌던 순간에는 '그 옛날에 동생을 팔아넘긴 죄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런 벌을 받는 것인가'라고 생각할만큼 형들에게도 요셉에 대한 기억은 잊을 수 없는 일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랬는데 그 동생이 내 눈 앞에, 그것도 이집트의 총리로서 서 있다니!!! 그 순간 형들의 마음에 놀라움도 있었겠으나 두려움이 더 크지는 않았을까?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된 동생에게 나쁜 짓을 했던 과거가 있기에 형들은 이제 동생으로부터 보복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염려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그렇게 놀라고 두려웠을 형들에게 요셉은 더욱 놀라운 말을 한다. 

 

(창 45:5) 하지만 이제는 염려하지 마세요. 저를 이 곳에 판 일로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저를 형님들보다 먼저 이 곳으로 보내셔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하신 것이니까요.
(창 45:6) 벌써 이 년 동안 땅에서는 식물이 자라지 않고 있어요. 더구나 앞으로도 오 년 동안은 심지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할 것입니다.
(창 45:7)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형님들과 형님들의 자손이 살아 남도록 하려고, 저를 먼저 이 곳에 보내신 것이에요.
(창 45:8) 그러니 저를 이 곳에 보내신 분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집트 왕의 가장 높은 신하로 만드셨습니다. 왕궁의 모든 일을 제가 맡고 있답니다. 저는 모든 이집트 땅의 주인입니다.

 

요셉은 분명히 형들의 죄를 알고 있었다. 자신을 이집트에 노예로 판 것이 형들이라는 것을, 그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형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자신을 이집트에 판 일로 마음 아파 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상황이었다. 아니, 지금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거지? 형들의 잘잘못을 따지고 자신에게 엎드려 빌면서 용서를 구하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도리어 형들을 위로한다고? 그런데 요셉이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뒤이어 나온다. "하나님께서 저를 형님들보다 먼저 이 곳으로 보내셔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하신 것이니까요."

 

요셉은 자기 인생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일이, 사사로운 사람 사이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일이라는 것을 고난 가운데 깨달았던 것이다. 멀쩡히 아버지의 총애받는 아들로 잘 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집트의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다가,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죄인이 되어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서 지내다가, 인고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파라오의 꿈을 해몽했다가 또 갑자기 이집트의 왕 다음으로 높은 2인자 총리가 되었던, 롤러코스터 같은 요셉의 인생이, 철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하나님께서는 형님들과 형님들의 자손이 살아 남도록 하려고, 저를 먼저 이 곳에 보내신 것'이라는,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볼 때 사람의 관점에서는 요셉이 엄청난 대인배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떻게 그런 형들을 용서할 수 있지?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라고 할 수 있겠으나 더 본질적인 부분을 묵상했을 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라는 깨달음이 주어진다. '어쩌면 내 인생은 이다지도 꼬일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스스로를 연민하고 상처와 원망 속에 살아왔다면 이런 용서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고난 중에 언제나 자신과 함께 동행해주시는 하나님을 의식했고, 하나님께서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보디발의 집에서, 왕의 죄수들의 감옥에서, 자신을 높여주시는 것을 보며 이것은 정말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 같다. 과연 인생에 고난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 고난 중에 나 자신을 바라보며 연민하고 후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과,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신지를 더욱 깊이 알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다.

 

요셉은 분명히 자신을 이 곳, 이집트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라고 분명히 말하는데, 거기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나 분노의 감정은 전혀 볼 수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억울하다 여기면 그 탓을 사람에게 하거나, 하다하다 안되면 결국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요셉은 자신을 이집트로 보낸 것은 하나님이시고, 고난과 연단의 세월 후에 이집트 왕의 가장 높은 신하로 만들어 주신 것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였다. 결코 내 힘, 내 능력으로 올라선 자리가 아님을 그 누구보다 요셉은 잘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모든 공로를 하나님께 돌리고, 자신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요셉의 모습을 보면 이것이 그저 '이상적인' 크리스천의 모습일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라고 명령하셨다. 

(벧전 1:14) 전에는 몰라서 하고 싶은 대로 악한 일을 저질렀지만,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로서 예전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벧전 1:15) 여러분을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동에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벧전 1:16) 성경에도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도록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셉만 이런 대단한 용서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용서를 할 수 있다. 
요셉만 이런 대단한 겸손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겸손을 가질 수 있다. 

 

단, 이런 요셉과 같은 용서와 겸손의 모습을 가지려면 요셉이 늘 하나님과 동행했기에 형통한 삶을 살았던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용서와 겸손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오늘날 신약시대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선택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믿는다면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셉의 이러한 용서와 겸손은, 단순히 그의 인생 안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었기에 더욱 마땅히 있어야 하는 과정이었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한 순종의 과정이었음을 새기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로 가게 되어 그들의 종이 되었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집트를 나오게 될 것을, 아브라함이 아브람이던 시절에 이미 약속하시고 예언하신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창 15:1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잘 알아 두어라. 네 자손은 나그네가 되어 낯선 땅에서 떠돌게 될 것이다. 그 땅의 사람들이 네 자손을 종으로 삼고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힐 것이다.
(창 15:14) 그러나 네 자손을 종으로 삼은 그 나라에 내가 벌을 주리니, 네 자손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그 나라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창 15:15) 아브람아, 너는 오래 살다가 평안히 네 조상에게 돌아갈 것이다.
(창 15:16) 네 자손은 손자의 손자 때가 되어서야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텐데, 이것은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은 벌을 받을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요셉의 용서와 겸손은 개인의 삶의 선택 같아 보이나 사실 요셉 한 사람이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었기에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성취되는, 놀라운 과정으로 쓰임받았다. 나의 개인의 삶의 순종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키(key), 핵심이 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들은 거의 다 이루어졌고, 이제 마지막 때를 향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만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 또한 성경에 무수히 기록되어 있으며 하나님은 결코 그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셨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면서 말이다. 그러하기에 이 말세의 때에, 오늘 나의 순종이 하나님의 역사를 성취하는 한 조각으로 쓰여질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고 기쁜 일이 될지를 생각하여 아직 성취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을 통해 성취되기를 바라고 주님께 나를 내어드릴 수 있는 거룩한 일에 더욱 도전해야겠다! 

 


 

좋으신 주님,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저의 수준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리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봅니다. 자꾸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지금 상황에서 이게 어디냐 하는 저의 안일함을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거룩의 수준으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저를 빚으시고 다듬어주시옵소서! (하지만 너무 아프게는 마시고 ㅠㅠ 제가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살살 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ㅎㅎㅎ)

 

용서와 겸손은 결코 사람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깊이 아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가운데 용서할 수 있고, 겸손할 수 있는 것임을 봅니다. 주여, 제 삶의 많은 시간들을 허투루 쓰지 않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날마다 자라나고, 그 아는 것이 지식으로 그치지 않고 진짜 삶이 되고 능력이 되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말만 앞서지 않고 마음과 행동이 따라갈 수 있게 성령님 날마다 저를 붙들어주시고 도와주시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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