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에스겔 23:43-49 / 아가페의 쉬운큐티 "오홀라와 오홀리바가 받은 심판"

 

[여는 이야기] 본문은 강대국들을 좇으며 우상숭배와 굴욕적인 외교를 일삼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임할 종말을 예언한다. 율법의 예언대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강대국들에 의해 약탈과 살육을 당하며 멸망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든 나라에 경고가 될 것이다. (쉬운큐티)

 

43 그 때에 내가 간음으로 닳아빠진 여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 저 여자를 창녀처럼 데리고 놀아 보아라. 저 여자는 창녀와 다를 바가 없다.’
44 그들은 그녀들과 잠자리를 같이했다. 마치 창녀와 잠을 자듯, 그들은 그렇게 음란한 오홀라와 오홀리바와 잠을 잤던 것이다.
45 그러나 의로운 사람이 나타나 간음을 저지르고 사람을 죽인 이 여인들을 심판할 것이다. 이는 이 여인들은 음란한 짓을 했고 그들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46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폭도들을 불러모아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약탈하고 치게 하여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할 것이다.
47 폭도들이 돌과 칼로 그들을 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딸을 죽이고 그들의 집을 불태울 것이다.
48 이렇게 해서 나는 이 땅의 음란한 짓들을 뿌리째 뽑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여자들에게 경고가 되어 너희의 음란한 짓을 본받지 않을 것이다.
49 너희는 음란한 짓에 대한 죄값으로 형벌을 받을 것이며, 우상을 섬긴 죄로 심판받을 것이다. 그 때에 너희는 내가 주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쉬운성경, 에스겔 23:43-49)

 

[묵상과 적용]


1.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죄 가운데 거하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43~44절)

 

43 그 때에 내가 간음으로 닳아빠진 여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 저 여자를 창녀처럼 데리고 놀아 보아라. 저 여자는 창녀와 다를 바가 없다.’
44 그들은 그녀들과 잠자리를 같이했다. 마치 창녀와 잠을 자듯, 그들은 그렇게 음란한 오홀라와 오홀리바와 잠을 잤던 것이다.

 

43절의 ‘그 때’는 오홀라와 오홀리바 즉,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주변 강대국을 의지하고 그 강대국들을 이스라엘로 불러들였던 때를 말한다. 42절에 광야 쪽에서 사람들이 술에 취한 채 몰려와 두 자매의 팔에 팔찌를 끼워주고 머리에는 아름다운 관을 씌워준 것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강대국의 도움을 받아 일시적으로 형편이 나아진 것처럼 보인 것을 의미한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강대국이 끼워준 팔찌와 아름다운 관, 즉 강대국의 물질로 부강함을 자랑하는 듯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모습을 ‘간음으로 닳아빠진 여자’와 같았다고 표현하신다.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품으시고 그들에게 무엇이 죄인지 가르쳐주시고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심기우려 애쓰셨던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요 백성이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이방 우상들을 끈질기게 따랐던 그 모습을 보시고 그들이 ‘간음으로 닳아빠진 여자’와 같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셨던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죄악들을 행하였을 때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존귀한 사랑을 받을만한 자녀요 백성이 아닌, 그저 ‘간음으로 닳아빠진 여자’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거부하고, 자기들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자기 눈과 귀를 만족시켜 줄 이방 우상들에게 마음을 준 것은 그들의 선택이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 이방 우상들에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저 여자를 창녀처럼 데리고 놀아 보아라. 저 여자는 창녀와 다를 바가 없다.’라고 하시며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을 유린하도록 내버려두셨다. 강대국들은 이스라엘을 대함이 마치 창녀와 잠을 자듯,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아닌 돈을 주고 육체의 본능을 충족시키는 것과 같은 관계로 대했다. 겉으로는 그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내민 손을 잡아주는 듯하였지만 결국에는 그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을 보호하기는커녕 도리어 이스라엘을 약탈하고 살육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죄 가운데 거함으로 인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참된 보호자인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고 끊임없이 강대국에 손을 내밀고 그 나라의 우상들을 섬겼던 것을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한 간음행위로 간주하셨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보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내 육체의 소욕을 채워줄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을 배반한 영적인 간음인 것이다. 내 마음에 하나님보다 앞서는 모든 것들이 영적인 간음의 대상이 된다. 나의 창조주요 참된 신랑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나의 마음을 맞추려 하기보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상황에 따라서 내 마음이 좌지우지되고 그런 마음의 요동함을 말씀으로 재조정하지 않고 그저 육체의 소욕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이러한 간음의 시작이 될 수 있고 그것을 계속 내버려두면, 오래 참으시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후에 결국에는 이스라엘에 심판을 임하게 하셨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러한 심판의 잣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겠다.

 


2. 하나님의 심판적인 개입에는 나의 ‘죄’라는 근거가 반드시 있다. (45절)

 

45 그러나 의로운 사람이 나타나 간음을 저지르고 사람을 죽인 이 여인들을 심판할 것이다. 이는 이 여인들은 음란한 짓을 했고 그들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간음을 저지르고 사람을 죽인 이 여인들, 즉 하나님을 배반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의로운 사람을 보내어 심판하시겠다고. 이유는 그들이 음란한 짓을 했고 그들의 손에는 그들의 죄악의 증거로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아무런 이유없이 심판이 임한 것이 아니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음란한 죄를 지었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절대 어떤 근거없이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내 삶에 하나님의 심판적인 개입이 있으실 때, 나에게 왜 이렇게 하시냐고 따지듯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지 회개해야 할 부분을 주님께 열린 마음으로 묻고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3. 악한 도구를 허락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먼저 회개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46~47절)

 

46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폭도들을 불러모아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약탈하고 치게 하여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할 것이다.
47 폭도들이 돌과 칼로 그들을 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딸을 죽이고 그들의 집을 불태울 것이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가운데, 폭도들이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약탈하고 치게 하여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하신다는 것이다. 폭도들과 같은 강대국들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돌과 칼로 치고, 그들의 아들딸을 죽이고 그들의 집을 불태우도록 내버려두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폭도들이 그들의 만행을 저지를 수는 없는 것이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육체의 소욕을 따라 강대국들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 강대국들이 폭도로 돌변하여 그들을 유린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셨기 때문인 것이다.

 

내 삶 가운데 어떠한 악한 도구로 쓰이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의 악함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부분이지만 내가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것은 그의 악함을 비난하기 이전에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했는지, 내가 무슨 일을 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내게 악한 도구로 쓰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먼저 돌아볼 때에 문제는 올바른 방향에서 풀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나는 잘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만 계속 나쁘다고 하면, 악한 도구를 통해서 나를 돌이키고 연단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의도대로 회개하여 깨끗함을 입고 다듬어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그들이 의지하던 강대국을 들어서 심판하셨지만,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하는 도구가 되었던 강대국들 역시 그들의 죄를 물어 심판하셨다. 그러므로 내 삶에 막힘과 압박이 들어올 때, 그 대상 자체에 집중하여 그들을 판단하고 비난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겠다.

 


4.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격하심을 깊이 생각하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무르자 (48~49절)

 

48 이렇게 해서 나는 이 땅의 음란한 짓들을 뿌리째 뽑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여자들에게 경고가 되어 너희의 음란한 짓을 본받지 않을 것이다.
49 너희는 음란한 짓에 대한 죄값으로 형벌을 받을 것이며, 우상을 섬긴 죄로 심판받을 것이다. 그 때에 너희는 내가 주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심판하시는 이유는 이렇게 해서 이 땅의 음란한 짓들을 뿌리째 뽑기 위함이시다. 그러면 모든 여자들, 즉 다른 나라들에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이스라엘의 모습이 경고가 되어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지었던 그 음란한 짓을 본받지 않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민족인 이스라엘의 넘어짐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취하여 나갈 때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심판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해주셨다.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너무 가혹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저지른 음란한 짓에 대한 죄값으로 그들이 형벌을 받는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을 섬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심판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리의 심판주이신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 공정하시고 공평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불의하지 않으며 합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그의 의로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기(시96:13)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넘어짐을 볼 때에 정말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내 안에 이것쯤이야 했던 죄악된 것들이 있다면 성령님의 조명하심 아래 낱낱이 비춰보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에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래 나무에 붙어 있던 가지들도 아끼지 않으셨다면, 여러분도 아끼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격하심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넘어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엄격하심을,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이셨습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께서도 인자함을 베푸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으면, 여러분도 잘리게 될 것입니다. (롬11:21-22)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 이스라엘이 간음으로 닳아빠진 여자와 같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심으로써 후에 그것을 보고 듣게 될 이스라엘 후손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음란한 짓을 본받지 말라는 경고를 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이끌어오셨는지 성경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며 오늘날을 살아갈 교훈을 얻을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이 생명의 말씀을 진실로 더욱 굳게 붙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그 어떠한 것으로도 타협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스라엘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토록 사실적이라는 것을 대할 때, 나의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기게 됩니다. 나 스스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육체의 죄성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사하여주신 은혜가 참으로 크고 크다는 것을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감사와 감격으로 날마다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담대히 나아가, 범사 가운데 알고 저지르는 죄와 모르고 저지르는 죄를 깨닫고 고백하여, 주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받고 주님이 주시는 정결함을 덧입기를 소망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일 수 밖에 없고, 결국에는 내가 지은 죄로 인하여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죄인인 인간의 삶일진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죄인이었던 저를 의인삼아 주신 값없는 은혜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롬6:23).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날마다 새기고 날마다 기리며 주님 앞에 늘 감사로 나아가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참으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이미지 출처 : http://lorawilliams08.wordpress.com/

 

 

2012년 11월 9일

 

거의 일년 만에 이 블로그에 들어온 것 같다.

하나님께서 내게 홀리씨드의 비전을 주신 이후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 이 블로그에 기록들을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한 걸음을 걸었다.

예수님의 이름을 내건 영광스러운 상품을 들고 만난 세상은,

말 그대로 '세상'이었다.

 

세상이 쫓고 있는 트렌드는 하나님의 진리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 그 걸음을 떼기 전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무엇인지,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가르치셨고   

주님께 기도라는 예방주사를 맞고 간 덕분인지,

부딪쳐오는 세상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어둠에 진리의 빛을 드러내고 왔다는 마음이 

너무나 기쁘고 충만했다.

 

그렇다. 우리에게 있어 '성공'이라는 평가는

너무나 세상적인 방식으로 길들여져 있다.

내가 생각하는 성과를 내야만,

즉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가 있어야만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그 틀을,

하나님과의 관계, 신앙적인 부분에서도 적용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한 걸음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믿음의 한 걸음이었기에,

주님이 기뻐하시고, 내게도 그 주님의 기뻐하심이 가득하게 된다.

 

그거면 되는 것이다.

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오늘의 한 걸음을 내디뎠다.

나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씨를 뿌리라 하셨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일을 이루었다.

 

주님의 영광이 담긴 제품을 통하여 주님이 뿌리라 하셨던 씨앗은 뿌려졌다.

이제 그 씨앗에 물을 주고 키우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다.  

 

이 어둠의 세상 가운데 주님께서 어찌하든 진리의 빛을 비추기 원하시는

그 간절한 마음, 그 신실하심을 내가 경험했으니,

밖으로는 씨를 뿌렸으되 내게는 이미 열매가 생겼구나!

 

감사하고 감사하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심이 무엇인지 이제야 쪼끔 맛보아 알겠다.

 

 

 

 

 

<Death brings Life>

 

어디선가 나는
달콤한 흙내음

 

바닥에 짓이겨진 은행잎이 내뿜는
마지막 열정

 

나 비록 볼품없이
찢기고 밟혔어도
내 안에는 창조주의
우주가 담겼다오

 

내 살결에 스민 그의 숨결이
찢긴 내 몸을 뚫고
당신을 지성소로 초청하오

 

내 몸 찢은 사망이
당신에게 생명이 된다면
내 사랑하는 아버지의
뜨거운 마음에
나의 온 마음을 실어
내어드리리다

 

영 단번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운
귀하신 어린양의 고백

 

짓이겨진 은행잎 향기가
내게 그 마음을 속삭이네

 

# # #

 

2011년 11월 5일

가을날에 성령님이 주신 영감으로 썼던 시입니다.

 

바닥에 밟힌 은행잎을 보고

그 향기를 맡으며

성령님께서 주신 감동을

시로 표현해봤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은

천지만물 어디에도 스며있지 않은 곳이 없네요.

 

사랑해요, 주님

만물이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듯

저도 제 삶을 통해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이미지 출처 : http://thebiblerevival.com/clipart47.htm

2011년 11월 4일 금요일 


내가 여호와께 간절히 구하는 오직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내 평생에 늘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우심을 보고
성전에서 주님을 뵙는 것입니다.
(시편27:4)

예전에는 이 구절을 보면서
어쩌면 다윗은 하나님께 이런 순전한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감탄하고 부러워했었다.

그런데 오늘 이 시편을 묵상하며,
다윗이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우리에게 성령을 오신 것으로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 깨달아지며,
신약시대를 사는 내게 다윗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 은혜로 주어졌음에
무한한 감사와 감동이 밀려온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하기 위해 죽으셨으며(갈3:14b),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자신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신다(고전3:16).

그러므로 다윗이 그토록 원했던,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우심을 보고
성전에서 주님을 뵙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성령이 내게 오심으로 이미 내게 이루어졌다!

놀랍고 놀라운 주님의 구속하심을 찬양하고 찬양합니다!
Praise the Lord♪


모든 사람의 '인생'이라는 열차는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누구든지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습니다. 그것은 정해져 있는 이치지요.
아무리 세상의 권세와 명예와 부와 건강을 가졌다 할지라도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한 번은 죽습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우리를 기다립니다.(히브리서 9:26)
우리의 수명은 칠십 년, 힘이 있으면 팔십 년이지만,
인생은 고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날아가듯 인생은 빨리 지나갑니다. (시편 90:10)

이 죽음의 열차가 달리다가 문이 열리는 때가 있습니다.
생명의 탈출구(Exit)로 이어지는 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이 열릴 때 잘 봐야합니다.
이것이 정말 나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줄 수 있는 문인지...
생명의 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문이다. 나를 통해 들어가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들어가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며, 또 좋은 목초를 발견하기도 할 것이다.
도둑은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왔다." (요한복음 10:9-11)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거듭남을 진정으로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듣게 될 때,
당신은 그것이 죽음이라는 인생의 열차에서 내릴 수 있는
생명의 탈출구가 열린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이 자기의 지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하는 어리석어 보이는 말씀 선포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1)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그 생명의 문에 내릴 수 있는 선택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유효합니다. 
자신의 인생이 언제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게 될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은총을 베풀 때에 너의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보십시오.
지금이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실 때이며,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 (고린도후서 6:2)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설령 죽는다 해도 살 것이며,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그 누가 되었든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2011년 10월 7일 목요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KRV)

베드로전서를 읽다가 문득 '선전'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머물렀다.

예전에는 기업을 선전(홍보,PR)하던 나를,
하나님께서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시니,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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