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es at the Burning Bush(Exodus 3:1-22)  출처 : https://www.findshepherd.com/exodus-1-4-the-story-of-moses.html

 

출애굽기 3장

1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서 ‘스스로 있는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하여라.”

15 하나님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그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여호와께서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시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이것이 영원히 내 이름이 될 것이다. 또 대대로 나를 기억할 표가 될 것이다.

16 가서 장로들을 모아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드디어 내가 너희를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집트에서 너희가 겪고 있는 일을 똑똑히 보았다.

17 이미 약속했던 바와 같이 나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당하는 고통으로부터 이끌어 내어 가나안 사람, 헷 사람, 아모리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그리고 여부스 사람들의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 땅은 젖과 꿀이 넘쳐 흐를 만큼 비옥한 땅이다.’

18 장로들은 네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면 너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이집트 왕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삼 일 길을 광야로 여행하게 해 주십시오. 그 곳에서 우리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제물을 바쳐야 하겠습니다.’

19 그러나 이집트 왕은 너희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큰 능력을 보아야만 너희를 보내 줄 것이니

20 그러므로 나는 이집트에 큰 능력을 보여 줄 것이다. 내가 그 땅에서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 줄 것이다.

21 나는 또 이집트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친절을 베풀게 만들어 너희가 이집트를 떠날 때에 빈 몸으로 가지 않게 할 것이다.

22 모든 히브리 여자는 이웃에 사는 이집트 사람이나 그 집에 사는 이집트 여자에게 은붙이와 금붙이와 옷가지를 달라고 하여 너희 아들들과 딸들을 꾸며 주어라. 이렇게 너희는 이집트 사람들이 준 것을 받아 가지고 이집트를 떠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의 모든 섭리는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고, 하나님이 운영하신다. 

 

 

 

 “일을 계획하시는 여호와,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에게 부르짖어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전에 알지 못하던 놀라운 일들과 비밀들을 일러 주겠다.’ (예레미야 33:2~3)

일의 계획과 그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심이 모두 하나님께 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에 하나씩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 뿐이다. 

 

 

걱정하지 말고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아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어느 누구도 측량할 수 없는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가운데 풍성히 임할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

그러므로 아무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간구하며 나아가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안이 내게 임하게 되고, 그 일을 이루실 하나님만 겸손히 따라갈 수 있다. 그러면 주님의 일은 주님이 이루실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내가 거짓말을 하여, 그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드러난다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데, 왜 내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3:7, 아가페 쉬운성경)

사람은 근본 죄인이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스스로는 절대로 깨달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당신을 계시해 주셔야만 사람이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분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순간, 나의 옳다 하는 소견으로, 나의 논리로 '하나님은 이러실꺼야' 라고 생각해 왔던가?! 그리고 어찌보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토당토않은 말들로 하나님을 안다 했던가?! 주여, 용서해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내게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실 때까지 잠잠히 하나님 말씀 앞에 머물러야겠다. 나의 옳다 하는 소견과 논리로 하나님을 재단하는 죄를 짓지말자!!!

"주님, 주님의 말씀은 내 노력, 내 의지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님을 스스로 계시해 주시려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제가 말씀을 깨닫고자 할 때도(하나님을 알고자 할 때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드러내어 주실 때까지 주님 앞에 잠잠히 겸손하게 엎드리고 기다리는 제가 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오직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의롭다고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2:13, 아가페 쉬운성경)

주여, 말씀을 듣고 마음과 생각으로 동의하는 것을 넘어서서 정말로 그 말씀이 내가 될 수 있게 성령님께서 힘과 능력을 더해주시옵소서!

오늘 아침 말씀묵상 중에 사도 바울의 이 말이 내 마음을 감동케 했습니다.

내가 자랑한다고 해도 진실을 말할 것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나를 보고 내게서 들은 것 이상으로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랑하는 것을 그만두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2:6, 아가페 쉬운성경)

어떤 사람이든지 나를 보고 내게서 들은 것 이상으로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사 자랑하는 것을 그만 두겠다니! 그 자랑 또한 세상적인 소유나 경험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보여주신 영적인 체험이었는데!

사도 바울은 자신을 보고 자신에게서 들은 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높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자랑하기를 그만 두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껏 "너 자신을 드러내라! 너의 존재감을 당당히 밝혀라! 너의 주관을 자신있게 주장하라!" 이런 교육을 받아왔는데,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은 우리가 배운 것과는 정 반대인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보며 예수님에게 동생들이 했던 말도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께 “형님의 제자들도 형님이 행하는 일들을 볼 수 있도록, 이 곳을 떠나 유대로 가십시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이 은밀하게 행해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법입니다. 형님이 이런 일들을 행하고 계시다면, 자신을 온 세상에 알리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7:3-4, 아가페 쉬운성경)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이 은밀하게 행해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죄된 속성 가운데 편만한 세상풍조인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고 때로는 더 부풀려서 말하고 과장되게 이야기하고....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에게서 온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또는 내가 내 자신의 교훈을 말하는 것인지 알 것이다.

자기 자신의 교훈을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기 위해 말하지만, 그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진실하며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 (요한복음 7:16~18, 아가페 쉬운성경)

자기 자신의 교훈을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위해, 즉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아는 것, 자기가 체험한 것, 자기가 배웠다 하는 것을 말할 때 자기의 영광을 위해 말하는 사람은 결국 그것이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이나,

사도 바울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 자기가 체험한 것, 자기가 배웠다 하는 것을 말할 때에도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더 높이고 더 거창하게 생각할 것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를 절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진심을 가지고 그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진실함을, 그에게 거짓이 없음을 아시고 그것을 드러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겸손임을 배웁니다. 나의 영광을 위해 나의 교훈을 설파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중심을 가지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스스로 절제하며 진정으로 겸손한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주님, 오늘도 말씀으로 저의 중심을 다잡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모습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며 삶을 살았던 것을 보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저도 그렇게 살게 도와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향유를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 이것은 삼백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값비싼 것인데 말이야."

 

그러나 유다가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 이 말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둑이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는 돈주머니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는데, 종종 돈주머니에서 돈을 제 마음대로 꺼내 쓰곤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2:5-6, 아가페 쉬운성경)

 

유다의 말은 일견 합당하고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어찌보면 마리아가 매우 비싼 나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소모적인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그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더 옳은 것 같고, 더 합당하고, 더 합리적이고, 더 좋아보이는 것처럼 유다는 주장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본심이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나중에 이 글을 기록할 때 가룟 유다의 본심을 꿰뚫어 본 것을 이야기합니다. 유다가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고...

 

그는 돈주머니를 관리하면서 종종 돈주머니에서 돈을 제 마음대로 꺼내 쓰곤 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다로서는 마리아가 그 향유를 판 돈을 오히려 예수님에게 맡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달라 했더라면 자기가 그 돈주머니를 관리하며 마음대로 그 돈을 쓸 수 있을 것까지를 내다보았을 때, 지금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준비를 하며 그 향유를 부어버리는 것이 제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었겠다~ 하는 것을요. 

 

유다는 자신의 본심을 가리기 위해 사람이 들었을 때 합당해보이는 말을 합니다. 나도 이럴 때가 있지 않았나 돌아봅니다. 가끔 진짜 내 마음을 가리기 위해서 겉으로 이것저것 붙이면서 그럴싸하고 옳게 보이는 말을 할 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본심을 가리는 말을 알아채지 못한다 할지라도(그러나 결국에는 드러납니다. 사도 요한이 이것을 기록한 것을 보십시오 ㅎㅎㅎ)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모두 다 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그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계셨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 어느 누구의 증언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2:24-25, 아가페 쉬운성경)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상 16:7, 개역개정)

 

아멘! 내 스스로 자꾸만 꾸미는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이 듣기에 좋아 보이는 말을 하고 있으면서 내 본심을 가리웠던 자리가 있었다면 주님 용서해주시고, 깨닫고 돌이킬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자꾸만 겉으로만 꾸미고 겉으로만 그럴 듯한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되지 않고, 정말로 속에서부터 예수님처럼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바라는만큼 삶으로 순종해서, 내게서 저절로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나게 도와주세요!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간구합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인의 뜻을 알고도 그 뜻에 따라 준비하지도, 행하지도 않는 종은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매맞을 짓을 한 사람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은 책임이 요구되고, 많은 것이 맡겨진 사람에게는 많은 것이 요청된다." (누가복음 12:47-48)
15/3/19

12 여호와여, 주께서 징계하시고 주의 법으로 교훈을 받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13 주는 이런 사람을 환난 날에 벗어나게 하여 악인을 빠뜨릴 함정을 팔 때까지 그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14 여호와는 자기 백성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며 자기에게 속한 자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15 정의가 정당하게 평가되는 날이 있을 것이니 마음이 정직한 자들이 기뻐하리라. 16 누가 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호하고 내 방패가 되어 줄까? 17 여호와께서 나를 돕지 않으셨다면 나는 지금 침묵의 땅에 가 있을 것입니다. 18 여호와여, 내가 미끄러진다고 외칠 때에 주의 사랑이 나를 붙들어 주셨으며 19 내 마음속에 걱정이 태산 같았을 때 주의 위로가 내 영혼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20 법을 구실로 백성을 괴롭히는 부패한 정치가가 어떻게 주와 교제할 수 있겠습니까? 21 그들은 선한 사람들을 해할 음모를 꾸미고 죄 없는 사람을 재판하여 죽입니다. 22 그러나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며 내가 피할 바위이십니다. 23 하나님은 악인들의 죄가 자기들에게 되돌아가게 하시고 그 악으로 그들을 파멸시킬 것이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시리라. (‭시편‬ ‭94‬:‭12-23‬ KLB)

12 Joyful are those you discipline, Lord, those you teach with your instructions. 13 You give them relief from troubled times until a pit is dug to capture the wicked. 14 The Lord will not reject his people; he will not abandon his special possession. 15 Judgment will again be founded on justice, and those with virtuous hearts will pursue it. 16 Who will protect me from the wicked? Who will stand up for me against evildoers? 17 Unless the Lord had helped me, I would soon have settled in the silence of the grave. 18 I cried out, “I am slipping!” but your unfailing love, O Lord, supported me. 19 When doubts filled my mind, your comfort gave me renewed hope and cheer. 20 Can unjust leaders claim that God is on their side— leaders whose decrees permit injustice? 21 They gang up against the righteous and condemn the innocent to death. 22 But the Lord is my fortress; my God is the mighty rock where I hide. 23 God will turn the sins of evil people back on them. He will destroy them for their sins. The Lord our God will destroy them. (‭Psalms‬ ‭94‬:‭12-23‬ NLT)


사람들이 너에게 나쁜 일을 했다 해도, 복수를 하거나 앙심을 품지 말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나는 여호와이다. 

(레위기 19:18)


신약 복음서에만 있는 줄 알았던 이 말씀이 구약 레위기에도 있었다니!

하나님은 역시 일관성이 있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한 맥락 가운데 있다. 


그래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인가보다.  



2019년 

글쓰기를 다시, 새롭게 

시작!

TV 드라마와 영화는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간혹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의한 컨텐츠가 있기는 하나 그것은 가뭄에 콩나듯 할 뿐 대개는 아주 아주 세상적이고 사람의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3:16)을 자극하는 컨텐츠일 뿐이지요. (이후의 이야기는 세상적인 컨텐츠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것을 지식적으로 알지만! 나의 눈과 마음은 드라마와 영화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건 도움이 안돼, 이걸 보는 건 시간낭비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용이 보고싶고, 궁금하고, '잠깐 보는 건데 이 정도 갖고 하나님이 크게 뭐라 하시겠어?'라고 생각하면서 슬금슬금 TV나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몸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별로 알지 못하고, 그냥 세상사람이나 다를 바 없이 '구별된 삶'을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에게는 TV나 영화를 보는 것이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사람에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고, 내 손과 발이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지요. (사실은 내가 TV를 켜고 내가 내 의지로 영화를 찾아서 보고 그러는 것인데도 말이에요~ ^^)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사실 악한 영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사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악한 영이 유혹하기도 전에 내 마음에서 이미 세상 것을 탐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과 그 세상을 향해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유혹해달라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열린 자세로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이 많아서~~ 왜? 아는데도 잘 안 되는 걸까? 세상 것들을 보고 들어봐야 기도할 때 방해되는 것만 많고, 주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밖에 안되는데, 왜 결심을 해도 잘 안 될까? 왜 난 여전히 그 드라마가 궁금하고, 그 스토리가 알고 싶고, 주인공이 어떻게 알콩달콩 사랑을 이루어갈지 보고싶은 것인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주님이 주신 사명의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세상 소식이 궁금하고, 그래서 포털의 뉴스를 뒤적이며 시간을 보낼 때도 있고, 그렇게 뉴스 기사를 통해 드라마와 영화의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그것을 또 찾아서 보고 싶기도 하고, 하나를 보기 시작하면 시간이 닿는 한 몇 회를 왕창 봐야 속이 시원할 정도가 되는 이 마음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주님 앞에 기도하면서 저의 마음을 토로하였을 때 주님께서 깨닫게 해주신 2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내 영혼이 무엇으로 목말라 하는지를 알고 정말로 채워야 할 것을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들어 자꾸만 내 마음에 '심심하다, 외롭다, 뭔가 새로운 것이 없을까?'라는 감정이 있었고, 이것을 채우려고 하다보니 무언가 보는 것, 듣는 것을 찾으려고 했고 그러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내 영혼의 그 비어있는 자리가 채워질 줄 알았습니다. 즉,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심심해지지 않을 것 같았고 외롭지 않을 것 같았고 재미있을 줄 알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다들 아시겠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나면 더 심심해지고 더 외롭고 나의 현실과 비교하면서 우울해지기도 합니다ㅎㅎㅎㅎ 왜냐하면 정말로 내 영혼의 빈자리는 사람이 만들어낸 세상적인 산물들로 채워질 수가 없거든요. 사람의 영혼은 근본적으로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영혼의 목마름은 정말로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어요.

 

영혼의 목마름이 하나님으로 채워질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도 딱 하나입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는 찬양을 하며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배 중에(기도를 하거나 말씀을 읽는 중에) 내 영혼이 하나님을 마주해야만!!! 그 헛헛하고 비어있었던 자리가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배 시간에 내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면 그 자리는 더 이상 '심심하다, 외롭다, 새로운 것이 없을까'하는 육체의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이미 더 고차원적인 채워짐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둘째는 '허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철저히 구분하여 '현실의 세계= 진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나 영화가 철저히 '허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허상을 보고 난 다음에 그것을 현실에 가져와서 이야기하면서 마치 그것이 허상이 아닌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TV나 영화 앞에서 우리는, 몸을 그 앞에 갖다두고 나의 영혼을 고스란히 그 허상의 세계에 둡니다. 그 순간 나의 영혼은 허상의 세계에 빠져있고 내 육체는 현실의 세계에 멈춰있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실상은 '현실'인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내 영혼을 그 허상의 세계에 두고, 육체는 가만히 묶어두면 내가 정말로 살아야 하는 현실에는 전혀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는 사실 후퇴하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드라마나 영화를 볼 시간에 만약 내가 청소를 한다면 현실의 내 삶에서는 깨끗한 방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 시간에 내가 설거지를 한다면 깨끗한 그릇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즉, 내 영혼과 육체를 허상의 세계에 묶어 두지 않고, 현실의 진짜 삶을 살면 내 삶에는 '진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만큼 허상의 세계는 '허상'입니다. 이 땅에서 나의 현실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듭니다. 내 영혼과 육체를 멍청하게 허상(거짓)에 묶어두는 사탄의 속임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내게 그 실체를 깨달으라고 하셨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1~2시간의 시간 동안 하나님의 나라는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흘러가는 그 시간 동안 허상의 세계에 내 영혼육의 닻을 내리고 도킹(docking)하고 있다니 이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인지!!! 깨달아야겠습니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운동을 한다면 내 육체가 단련되는 생산적인 결과를 얻게 되겠지요~ ^^

 

주님과의 영적인 만남의 시간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주님과 함께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요한일서 3: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 디모데전서 4:7~8

7 하나님의 진리와는 다른 어리석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가르침에 솔깃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일에 스스로를 훈련시키십시오.
8 육체의 훈련은 약간의 도움을 주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의 훈련은 모든 일에 유익합니다. 경건은 이 세상에서의 생명뿐 아니라, 앞으로 올 세상에서의 생명도 약속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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