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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하나님의 목적은 '나의 백성으로 하여금 나(여호와)를 예배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출 7:14) <첫 재앙-물이 피로 변하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파라오는 고집이 세서 백성을 내보내려 하지 않는다.
(출 7:15) 아침에 파라오가 나일 강으로 나올 것이니, 너는 가서 강가에서 그를 만나라. 뱀으로 변했던 지팡이를 가지고 가거라.
(출 7:16) 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셨습니다. 주님께서 내 백성을 광야로 보내서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지금까지 왕은 이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출 8:1) <둘째 재앙-개구리 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파라오에게 가서 전하여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내보내서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

(출 8:20) <넷째 재앙-파리 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파라오를 만나라. 그가 강으로 나올 것이니, 그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

(출 9:1) <다섯째 재앙-짐승의 죽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파라오에게 가서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

(출 9:13) <일곱째 재앙-우박>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파라오에게 가서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

(출 10:3)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언제까지 내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지지 않을 것이냐? 내 백성을 보내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


오늘 통독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파라오와 이집트 백성들에게 열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알게 하셨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붙들고 있던 세상 권세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나의 구원을 놓고 볼 때에도 죄에서 나를 건져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입은 것이며, 구원이라는 것은 나로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지만 이것은 결코 나의 '안위'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또한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구원해주신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되게 하심'인것처럼 나를 세상으로부터 구원해주신 목적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되게 하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으로부터 건짐받은 후,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물에서 건져놨더니 도리어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되어 세상을 섬겼던 모든 것에서 돌이켜 나의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될 것을 더욱 굳게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나는 하나님의 자비로써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이 마땅히 드려야 할 영적인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롬 12:1~2)

I appeal to you therefore, brothers,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acceptable to God, which is your spiritual worship.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al of your mind, that by testing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what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Roman 12:1~2)

 

 

오늘 출애굽기 통독에 들어가면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상 자신들의 죄로 인해 결국에 세상(이집트)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영혼들의 울부짖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출 2:23) 세월이 흘러서 이집트 왕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강요에 의해 너무나 힘겹게 일했기 때문에 신음했습니다. 그들이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출 2:24)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셨습니다.
(출 2: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보시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혹자는 이 말씀을 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와달라고 부르짖을 때까지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왜 하나님은 그제서야 그들을 도와주시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계획하고 계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아브람이었던 때에 벌써 그의 후손이 나그네가 되어 낯선 땅에서 떠돌게 될 것이며 종으로 400년을 힘겹게 지내다가 그 나라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고 이미 약속하신 바가 있으셨습니다. 

(창 15:1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잘 알아 두어라. 네 자손은 나그네가 되어 낯선 땅에서 떠돌게 될 것이다. 그 땅의 사람들이 네 자손을 종으로 삼고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힐 것이다.
(창 15:14) 그러나 네 자손을 종으로 삼은 그 나라에 내가 벌을 주리니, 네 자손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그 나라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창 15:15) 아브람아, 너는 오래 살다가 평안히 네 조상에게 돌아갈 것이다.
(창 15:16) 네 자손은 손자의 손자 때가 되어서야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텐데, 이것은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은 벌을 받을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서 보면,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은 벌을 받을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때를 인내하시며 기다리셨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때가 이르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그곳에 있던 가나안 백성들에게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 6:2) 하나님께서 또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이다.
(출 6:3)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내 이름을 여호와라고 알리지는 않았다.
(출 6:4) 나는 또 그들과 언약을 세워서, 그들이 나그네처럼 살고 있던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출 6:7) 나는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며, 너희는 내가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이집트 사람들이 너희에게 강제로 시키는 힘든 일에서 너희를 구해 낼 너희의 하나님이다.
(출 6: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손을 들어 약속했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리니, 나는 그 땅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나는 여호와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죄의 대가로 주어진 세상에서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영혼들을 하나님은 계속해서 주목하고 계시고 어찌하든 가나안 땅(결국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애타는 마음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인간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죄의 대가를 치르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려고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통독에서는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모세와 아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전도자를 보내시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통독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킬 사명을 주시고, 그에게 파라오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라고 하시는 장면과 모세가 하나님께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나를 보낸 하나님을 누구라고 해야하느냐 등등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끊임없이 강퍅한 이스라엘 백성과 그럼에도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야 하는 전도자의 마음을 또한 헤아리게 되는 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영혼들을 향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내가 먼저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또다른 영혼들에게 전하는 전도자가 되려면 정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에 젖어야만 그 과정이 힘겹지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십자가에서 기꺼이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것같이, 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불타는 사랑을 가진 전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가 8:6) 

Place me like a seal over your heart, like a seal on your arm; for love is as strong as death, its jealousy unyielding as the grave. It burns like blazing fire, like a mighty flame. (Song of Songs 8:6)

새해부터 시작한 걷기! 오늘도 아주 기분좋게 산책가듯 그렇게 잘 다녀왔다. 한동안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는 한파를 경험해서였는지 오늘 0도가 되었는데 어찌 그리 덥던지!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가끔은 더 힘든 경우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 같다. 그래야 조금 힘들 때를 이겨낼 수 있으니까...^^

오늘 산책 중에 정말로 멋진 광경을 여러번 볼 수 있었다. 

몇 마리의 오리가 강 위를 점프하듯 뛰어서 아름다운 물결을 만들며 그들만의 경주를 하는 것도 보았고, 
엉덩이가 토실토실한 고라니가 어쩌면 그 가느다란 다리로 껑충껑충 신나게 잘도 뛰는지 그것도 보았고, 
엄청 큰 독수리가 날개를 쫙~ 펴고 아주 가까이서 웅장하게 비상하는 것도 보았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멋있었는데 사진을 찍을 새도 없이 그 장면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아쉬웠지만 그 모습이 아직 내 눈에는 선하다.  

이렇게 조금만 고개를 들어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보면 그 크신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는데, 어찌 그동안 그렇게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나의 세계에 갇혀서 나의 생각 속에 힘들다, 어렵다, 피곤하다 했었던 것인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지만물을 보면 참으로 나의 교만함을 깨닫게 되고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참으로 이 말씀이 저절로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마 6:26) 하늘에 있는 새를 보아라.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쌓아 두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새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마 6:27) 너희 중에 누가 걱정해서 자기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느냐?

(마 6:28) 너희는 왜 옷에 대해 걱정하느냐? 들에 피는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 보아라. 백합은 수고도 하지 않고, 옷감을 짜지도 않는다.

(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하나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옷을 입어 보지 못하였다.

(마 6:30) 하나님께서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불 속에 던져질 들풀도 이렇게 입히시는데, 너희를 더 소중하게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마 6: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혹은 ‘무엇을 입을까?’ 하면서 걱정하지 마라.

(마 6:32) 이런 걱정은 이방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이 필요한 줄을 아신다.

(마 6:33) 먼저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의를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덤으로 주어질 것이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고, 오늘의 고통은 오늘로 충분하다.”

아멘!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삶 가운데 주님을 붙들고 걸어가는 한 걸음의 순종만이 필요한 것이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자! 오늘 주님이 허락하신 나의 삶의 환경 속에서, 내가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일 것이다. 

산책 중에 이 부부의 간증을 들었는데, 오늘 깨닫게 된 말씀과 너무나 일맥상통하는 간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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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만 따라가는 믿음의 삶! 남들이 보기에는 기적같기도 하고 때로는 대책없어 보이기도 하겠지만 주님이 내 마음의 중심을 아시고, 주님이 아시는 순종을 올려드렸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것이다. 

이 간증 중에도 나오는 찬양을 오랜만에 찾아보았다. 1절 가사 밖에 몰랐는데 2,3절이 이렇게나 좋은 가사였는줄 몰랐다. 

주님, 내 삶을 붙드시고 주님의 의로운 길로만 인도해주세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16:9) 아멘!

 

<내일 일은 난 몰라요> 

1.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 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길 주옵소서.


2. 좁은 이 길 진리의 길 주님 가신 그의 길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갑니다
성령이여 그 음성을 항상 들려 주소서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 말게 하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아버지여 주신 사명 이루소서


3. 만왕의 왕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만백성을 구속하는 참 구주가 되시네
순교자의 본을 받아 나의 믿음 지키고
순교자의 신앙 따라 이 복음을 전하세

불과 같은 성령이여 내 맘에 항상계셔
천국 가는 그날까지 주여 지켜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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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혜옥 2021.01.13 23:20

    안이숙 사모님이 작사한 노래~~안이숙 사모님의 삶이 녹아있는 가사인 것 같아...순교자의 본을 받아...이런 대목이...


가능하면 저탄수화물 식단을 지향하고 싶지만! 크림소스 파스타가 너무너무 먹고 싶을 때! 이 레시피로 요리해보세요^^ 크림파스타 맛이 물씬 나는데, 칼로리도 낮고, 저탄수화물 식단으로 건강과 입맛! 모두를 잡을 수 있답니다. 

재료: 양파, 버섯, 그리고 야채 아무거나 (저는 냉장고에 돌아다니는 당근 자투리와 어제 먹다 남은 브로콜리를 추가했어요.), 우유, 버터, 치즈, 오트밀, 소금, 후추, 갈릭파우더

방법: 이것도 정말 간단한 요리입니다!

1. 버터에 양파를 먼저 볶습니다. 

2. 그리고 다른 야채들과 버섯을 넣어서 볶습니다. (저는 느타리버섯과 새송이 버섯을 잔뜩 넣었어요)

3. 소금, 후추간 살짝만 해줍니다. 갈릭파우더도 넣습니다. (다진 마늘 넣어도 됩니다. 마늘은 들어가면 풍미가 훨씬 좋으니 꼭꼭 넣어주세요~)

4. 야채들이 어느 정도 익으면 우유를 자작하게 부어줍니다. 

5. 치즈를 넣어(아무거나 집에 있는걸로) 섞으며 살짝 졸여줍니다. 

6. 오트밀 2~3숟갈을 넣습니다. (저는 퀵오트가 있어서 그것으로 했는데 그러면 훨씬 쉬운 것 같아요. 국물의 정도를 보시고 오트밀은 원하는만큼 넣어주세요) 

7. 오트밀이 적당히 불면서 익고 국물도 맛있게 졸아들면 끝! (바닥에 눌러붙을 수 있으니 약불에서 계속 저어주세요)

 

 

보이시죠? 야채를 조금씩 했는데 다 섞으니 엄청 양이 많아졌.....ㅋ 그렇지만 다 야채들이니 실컷 먹어도 괜찮겠지요? ^^ 매콤한 반찬을 곁들여 드시면 좋습니다. 저는 집에 고추멸치다대기 해둔게 있어서 그거랑 같이 먹었더니 맛이 아주아주 좋았어요!

배부르고 건강하고 맛있게! 조금만 신경쓰면 충분히 멋진 요리를 집에서도 간단하게 해먹을 수가 있어서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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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연단을 받았던 그 긴 세월 동안, 요셉 뿐만 아니라 요셉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 야곱에게도 연단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오늘 통독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는 요셉을 시기하여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요셉을 팔기까지 했던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이 사라진 그 오랜 세월 동안 많은 후회와 회개와 돌이킴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형제들의 대화와 유다가 요셉에게 간청한 내용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창 42:21) 그들이 자기들끼리 말했습니다. “우리가 동생에게 한 일 때문에 이런 벌을 받는가 보다. 우리는 동생이 고통을 당하면서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보면서도 동생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창 42:22) 그러자 르우벤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아이를 해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한 일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런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창 44:30) 그러니 저희가 그 막내 동생 없이 집에 계신 아버지께 돌아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저희 아버지에게 그 아이는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아들입니다.
(창 44:31) 아버지께서 만약 그 아이가 저희와 함께 오지 않는 것을 아신다면 아버지는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는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죄인이 되고 맙니다.
(창 44:32) 저는 아버지께 그 아이를 무사히 돌려 보내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만약 제가 그 아이를 아버지에게 돌려 보내지 못하면, 두고두고 그 죄값을 받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창 44:33) 그러니 제발 저를 남겨 두어 종으로 삼으시고, 그 아이는 형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창 44:34) 그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는 한, 저는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슬퍼하시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결국 요셉은 이러한 유다의 말을 듣고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집트의 총리인 자신이 바로 형들의 동생 요셉이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한편, 야곱의 경우도 요셉을 드디어 만나고 파라오에게 갔을 때 고통스러운 삶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자신의 꾀와 용기로 살았던 야곱이 참으로 많이 변화되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창 47:9) 야곱이 파라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삼십 년이 되었습니다. 제 조상들보다는 짧게 살았지만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기나긴 세월 동안 무슨 일을 만나든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창 46:1) 그리하여 이스라엘이라고도 부르는 야곱은 가지고 있던 것을 다 챙겨서 길을 떠났습니다. 야곱은 브엘세바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야곱은 자기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습니다.
(창 47:31) 야곱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여라.” 이에 요셉은 그렇게 하겠다고 야곱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침대 맡에 엎드려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요셉을 미리 이집트로 보내어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준비하심이 있으셨지만 

(창 45:5) 하지만 이제는 염려하지 마세요. 저를 이 곳에 판 일로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저를 형님들보다 먼저 이 곳으로 보내셔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하신 것이니까요.
(창 45:6) 벌써 이 년 동안 땅에서는 식물이 자라지 않고 있어요. 더구나 앞으로도 오 년 동안은 심지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할 것입니다.
(창 45:7)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형님들과 형님들의 자손이 살아 남도록 하려고, 저를 먼저 이 곳에 보내신 것이에요.

동시에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스라엘)과 그 형제들의 삶 또한 연단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오늘의 통독에서도 뵐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이처럼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통독을 하면서 조급해하지말고 끊임없이 주님께 연단되기를, 빚어지기를 구하며 인내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예전에 어떤 레스토랑에서 푸팟퐁커리를 처음 먹어보고 "아니, 세상에 이런 맛이!"라며 그 감칠맛과 부드러움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랬는데 게살을 넣지 않고도 비슷한 식감에, 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가 있어서 이것저것 참고해서 저의 스타일로 만들어 봤어요^^

재료: 양파를 기본으로 아무 야채나(저는 애용하는 유기농 냉동야채를 썼어요 ㅎㅎㅎ), 계란, 우유 약간, 카레가루, 마늘가루

방법: 정말 간단합니다 ^^

1. 올리브유 혹은 버터를 넣고 양파를 볶습니다. 

2. 양파가 투명해질 때쯤 다른 야채를 넣고 같이 볶습니다. 

3. 소금 후추간 약간만 해줍니다. (카레를 넣을거라 많이 안해도 되는데, 간이 너무 없으면 나중에 간이 야채와 따로 놀 수 있어서요) 그리고 마늘가루도 이때 넣습니다. (다진마늘도 괜찮은데 저는 마늘가루가 있어서 그걸 썼어요)

4. 그 상태에서 카레가루를 약간 넣습니다. 뭐랄까 약간 찐득하다 싶을 정도의 양으로요. (저는 오뚜기카레 약간 매운맛 썼어요)

5. 그리고 우유를 자작하게 붓습니다. (이 때, 우유는 너무 많이 넣으면 안됩니다. 우유가 많이 들어가면 맛이 너무 싱거워지고 다른 음식에 얹어먹기가 좋지 않아요. 우유는 찐득했던 카레가루가 풀어질 정도로, 내가 원하는 묽기가 나올 정도로만 넣습니다.)

6. 우유가 살짝 졸아들고 카레가 야채에 잘 어우러졌을 무렵에 계란을 넣습니다. (양을 봐서 1개든 2개든 3개든 적당히 넣으면 됩니다^^ 단, 너무 많이 넣는건 비추입니다. 야채카레 양에 1/3정도?가 되는게 좋은 것 같아요)

7. 그리고 계란이 익도록 잘 저어줍니다. 그럼 끝!입니다^^

 

짜잔! 저는 묽기를 좀 되직하게 했더니 훌륭한 한 그릇 음식이 되었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밥없이 한 그릇만 먹었는데도 아주 배부르고 맛있고 건강한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없는데 아무 음식이나 먹기는 그렇고, 라면 하나 얼른 끓여먹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렇게 한 그릇 해서 드셔보시는건 어떨까요? 이 상태로도 느끼하지 않고 훌륭한 맛이지만 피클이나 고추절임을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을거에요! 

Photo by HY Choi


오늘은 하나님과 함께 하며 형통했던, 그 유명한 요셉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창 39:2, 개역개정)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2, 쉬운성경)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요셉이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주인인 이집트 사람 보디발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창 39:5) 그래서 요셉은 집안 일과 보디발이 가진 모든 것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보디발이 가진 모든 것, 집에 있는 것이나 들에 있는 모든 것에 복을 주셨습니다.


(창 39:21)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셨으며, 요셉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간수장의 마음에 들게 하셨습니다.
(창 39:22) 간수장은 요셉에게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를 맡겼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맡았습니다.
(창 39:23) 간수장은 요셉이 하는 일에 조금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요셉이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하게 만드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서 이집트까지 갔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정말 억울하고 힘든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있을 때에도, 왕의 죄수들을 넣는 감옥에 있을 때에도 세상은 알 수 없는 '형통함'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곳도 아닌, 상상도 못해봤을 다른 나라에 열두살의 나이에, 그것도 피를 나눈 형제들에게 팔려서 가게 되었던 요셉...남의 집에서 종살이 하는 것도, 억울한 모함에 의해 감옥살이 하는 것도 어찌 형통하다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의 그 고난의 시기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매 형통하였더라"라고 표현합니다. 아마도 요셉은, 그의 상황과 환경은 어렵고 힘들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먼저는 그의 영혼이 그 시기를 견딜 수 있었고 그것을 성경에서는 '형통했다'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종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보디발은 요셉에게 맡겼고, 왕의 죄수들을 넣는 감옥에서도 간수장이 요셉을 마음에 들어하여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를 맡기기까지 하였으니 신분은 종이요, 죄수였으나 그가 받은 대우와 처지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매 진실로 형통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요셉이 받았던 연단은 결코 그의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요셉을 이집트의 높은 자리에 앉히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 통독을 하면서 비록 요셉이 어려서부터 다른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고 이집트로 팔려가게 되었지만 하나님께는 온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서 큰 그림이 있으셨고 요셉은 그 그림의 한 조각이었던 것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요셉을 중심으로만 보면 참으로 억울하기 그지 없는 삶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요셉의 삶을 보면, 비록 형들이 그를 이집트로 보내는데 악한 통로로 쓰임은 받았지만(그들이 요셉을 팔지 않았더라면 요셉은 다른 방법으로 이집트로 보내졌겠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결국에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로 가게 되고, 나중에 출애굽을 하게 되고, 가나안 땅으로 향해 가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읽으면서, 내 삶의 히스토리만 단편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나의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한 조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순종하여 주님의 뜻을 도모할 것인지 이것을 더욱 구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Photo by S. Fukaura in Perth


오늘 통독에서는 야곱의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야곱은 삼촌 라반이 수차례 품삯을 바꾸며 아침 저녁으로 일을 시켰던 20년 동안 엄청난 고생을 했고, 자기가 속였던 형 에서를 다시 만날 것을 두려워 했으며, 딸 디나의 사건 때문에 시므온과 레위가 하몰과 세겜을 비롯해 그 성의 사람들을 다 죽였을 때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에게도 분명히 고난이 있었고, 모든 인생이 그렇듯이 그 고난은 자신에게 가장 힘든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통독에서 보면 야곱은 그 고난 앞에서 낙심하고 좌절한 채로 그냥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예배의 제단을 쌓았으며, 
하나님을 붙들고 복을 달라고 씨름하였습니다. 

(창 31:3, 쉬운성경)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조상들이 사는 땅으로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창 32:9) 야곱이 말했습니다. “제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제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네 나라, 네 집으로 돌아가거라. 네게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창 32:10)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온갖 은혜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처음 요단 강을 건넜을 때, 저에게는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에게는 재산을 둘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많은 재산이 있습니다.
(창 32:11) 제발 저를 제 형 에서로부터 구해 주십시오. 에서가 와서 저와 아이들의 어머니와 아이들까지 해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창 32:12)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겠다. 내가 네 자손을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도 없이 많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창 32:26) 그 사람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날이 새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지만 야곱이 말했습니다. “저에게 복을 주시지 않으면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창 32:27) 그 사람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야곱입니다.”
(창 32:28)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 이다. 네가 하나님과 씨름했고, 사람과도 씨름을 해서 이겼기 때문이다.”

(창 33:18) 야곱은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 땅 세겜 성에 무사히 이르렀습니다. 야곱은 성 동쪽에 장막을 쳤습니다.
(창 33:19) 야곱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은 돈 백 개를 주고 샀습니다.
(창 33:20) 야곱은 그 곳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 이라고 지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야곱이 라반을 잘 떠날 수 있게 해주셨고, 
야곱을 향한 에서의 증오를 없애주시고 관계를 회복시켜주셨으며, 
가나안 족속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야곱의 아들들을 쫓아오지 못하게(창35:5) 해주셨습니다.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큰 깨달음 혹은 믿음? 교훈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 바로 다음 구절인 것 같습니다. 

(창 35:3) 여기를 떠나 벧엘로 가자. 그 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을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는 내가 괴로움을 당할 때에 나를 도와 주셨으며,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와 함께 계셨다.”

오늘의 통독을 하면서
고난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자!
내게 길이 없고 방법이 없을 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더욱 매달리자!라고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고, 그 약속은 이미 성경에 수없이 나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 말씀에 따른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야곱의 삶을 통해 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내가 괴로움을 당할 때 나를 도와주시고,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와 함께 계실 하나님!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나의 열심이 결코 흐려지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photo by HY Choi

 

오늘 말씀에서는 아브라함이 자기 종 엘리에셀을 메소포타미아로 보내어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찾아오라고 하는 내용과 야곱과 에서의 탄생, 야곱이 레아와 라헬과 결혼한 이야기가 주로 나옵니다. 

창세기의 내용은 장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서, 사실 통독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곤 합니다. 더 읽고 싶지만 마치 다음을 위해서 아껴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만큼 ㅎㅎㅎ 진도가 잘 나가지요~ (이러다가 레위기에 들어가면 다들 힘들어한다는....ㅋ)

오늘 말씀에서 크게 두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는데, 첫번째는 엘레에셀의 신중함 VS 에서의 신중치 못함, 두번째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나의 선택에 대한 부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엘레에셀의 신중함(말씀을 새겨듣고 붙듬) VS 에서의 신중치 못함(약속 따윈 다 잊어버림)이 오늘따라 더욱 부각되어 보였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아들의 아내감을 찾아오라고 보내면서 했던 말을 아주 신중하게 듣고 새겼습니다. 

(창 24:6, 쉬운성경) 아브라함이 종에게 말했습니다. “안 된다. 내 아들을 그리로 데려가면 안 된다.
(창 24:7) 여호와께서는 하늘의 하나님이시다. 주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고향, 내 친척의 땅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리고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셨다. 주께서 천사를 네 앞에 보내셔서 내 아들의 아내를 데려오는 일을 도와 주실 것이다.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해 아내를 골라라.
(창 24: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기를 원치 않으면, 너는 이 약속에 책임이 없다. 하지만 내 아들을 그리로 데려가서는 안 된다.”

그리고 리브가를 만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여러 방법으로 리브가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삭의 짝이 맞는지를 시험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엘레에셀은 주인의 명령에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반해, 뒤이어 나오는 에서의 모습을 보면 맏아들의 권리(장자권)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붉은 죽을 먹겠다고 맏아들의 권리를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창 25:29) 어느 날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는데 에서가 들판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에서는 몹시 배가 고파서
(창 25:30)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그 붉은 죽을 좀 다오. 내가 배가 고프구나.” 이것 때문에 에서는 ‘붉은’이란 뜻에서 에돔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창 25:31) 그러자 야곱이 말했습니다. “먼저 나에게 맏아들의 권리를 파세요.”
(창 25:32) 에서가 말했습니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그까짓 맏아들의 권리가 무슨 소용이냐?”
(창 25:33) 야곱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권리를 나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세요.” 에서는 야곱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이렇게 에서는 맏아들의 권리를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창 25:34) 그러자 야곱이 에서에게 빵과 죽을 주었습니다. 에서는 그것을 먹고 마신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에서는 맏아들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에서는 결국 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새기지 못하고 있었기에 당장 내 육신의 만족을 위하여 맏아들의 권리를 파는 엄청난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습니다. 물론 나중에 야곱이 자신을 속였다고 심히 분노하지만 장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새카맣게 뒤로 한채 먹을 것과 장자권을 맞바꾼 것은 분명히 에서 자신이었습니다. 신중하게 말씀을 기억하고 새겼던 사람(엘리에셀)과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고 신중치 못하게 자신의 육신의 욕망이 앞섰던 사람(에서)은 이토록 다르다는 것을 두 인물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통독 가운데 야곱과 에서, 라헬과 레아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은 불공평하신가? 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그런 모양으로, 그런 환경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아니신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리브가의 태중에서 이미 야곱과 에서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창 25:21) 이삭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아내를 위해 여호와께 기도드리니, 여호와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어 주셨으므로, 리브가가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 25:22) 그런데 리브가의 뱃속에 있는 아기들이 서로 다투었습니다. 리브가는 “어찌하여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생각하며 여호와께 나아가 여쭈었습니다.
(창 25:23) 여호와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나라가 네 몸 안에 있다. 두 백성이 네 몸에서 나누어질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먼저 다 정하시는 것인가?'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게 가능하니 하나님이신거겠지요?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롬 9:10) 그뿐만이 아닙니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에게서 아이를 임신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롬 9:11)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그들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시는 목적을 굳게 세우기 위해,
(롬 9:12) 리브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불러 주시는 분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롬 9:13) 이것은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라고 기록된 대로입니다.
(롬 9:14)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공정하지 못하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롬 9: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자 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롬 9:16) 그러므로 모든 것이 사람의 요구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태어나는 환경이나 상황은 모두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내가 어떤 부모를 만나고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고 어떠한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는지는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고 나서야 그렇게 '되어진' 것을 알게 되니까요. 

그런데 분명히 태어나는 조건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지만 매순간 삶의 선택은 나의 몫이라는 것을 오늘 통독 가운데 더욱 새기게 되었습니다. 

에서는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먹을 것에 장자권을 팔았고,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복을 다 받게 된 것을 알자 그를 미워하며 죽이려 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 아니냐? 하실 수도 있지만...아무튼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매 순간 선택을 이루어가지요.)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라헬과 레아의 이야기를 보면, 이 두 여인은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듯 자녀를 낳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많은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을 이 두 여인과 두 몸종들을 통해 야곱이 열두 아들을 갖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이루어 성취하셨습니다. 그 여인들도 그런 경쟁을 통해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생기게 될 줄은 몰랐겠지요.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피조물이 어찌 창조주의 뜻과 계획을 감히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태어나는 것조차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걸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매 순간 삶 속에서 내가 무엇을 믿을지, 무엇을 행할지 그 선택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내가 마땅히 행할 바를 찾을 수는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 오늘 내가 처한 상황과 형편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 어떤 존재가 되는가 하는 것이라고 오늘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뜻에 순복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인가? 아니면 계속 남탓, 상황 탓을 하며, 원망과 증오로 나를 채우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절대로 동행할 수 없는 죄인으로 살 것인가? 

이 선택은 내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해도 제가 마땅히 예수님을 믿는 가운데 행할 바를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것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

photo by HY Choi

 

오늘의 통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신을 향한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대하16:7)의 열심"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먼저 듣고 하나님께 그 땅에 의인이 50명이라도 있으면, 45명, 40명, 30명....단 10명이라도 있으면 심판하지 않으시겠느냐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모습이나 조카 롯을 하나님께 부탁했던 그런 내용을 보면서 아브람에게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통해 재물을 얻게 하시고, 사라를 통해 이삭도 얻게 하시는 등 계속해서 아브람(아브라함)의 삶을 신실하게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창 15:5, 쉬운성경)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바라보아라. 셀 수 있으면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네 자손들도 저 별들처럼 많아지게 될 것이다.”
(창 15:6)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런즉 여호와께서는 이런 아브람의 믿음을 보시고 아브람을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하십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이 시험 안에는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향한 기대가 있었다!"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히 11:17)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시험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는데도 아들을 바칠 준비를 한 것입니다.
(히 11:18)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네게 약속한 후손은 이삭을 통해 나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 11:19)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려 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멋지게 하나님의 기대에, '죽은 사람도 살려주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꺼이 이삭을 제물로 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에 부응하듯 하나님은 그에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창 22:12) 천사가 말했습니다. “네 아들에게 손대지 마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마라. 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낌없이 바치려 하는 것을 내가 보았으니,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노라.”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에 감격하신 듯한 하나님은 이전에도 해주셨던 약속을 다시 단단히 새겨주듯이 또 다시 말씀해주시며 그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창 22:16) 천사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나에게 바치려 했으므로, 맹세코 내가 너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해 주겠노라.
(창 22:17) 내가 분명히 너에게 복을 주고 또 많은 자손을 줄 것이다. 네 자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될 것이며, 네 자손은 원수의 성들을 정복하게 될 것이다.
(창 22:18)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므로, 네 자손을 통해 땅 위의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듯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삭을 통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약속하셨으면서도 이삭을 바치라 하셨지만 그 말씀을 하실 때 얼마나 그의 믿음에 대한 기대감이 있으셨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아브라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수많은 믿음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다 이루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도 주실 것입니다. 

(요 11:40, 개역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요 11:40, 쉬운성경)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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